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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나눔] ♡ 나는 왜 전도도 못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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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태구 |
날짜 | 2025-03-09 |
조회수 | 1253 |
♡ 나는 왜 전도도 못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 할까?
☆ 단적으로 믿음이 없다는 증거다 더 중요한 것은 목사님도 역시 "야고보서 3:1절"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그러므로 선생이 더 큰 심판받을 것을 각오했다면? 바울이 버린 것 때문에 절대로 타락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되면 대우받고 괜찮은 직업이다 생각하고 목사가 된 것이 타인의 영혼까지 멸망시키고 나아가 인류의 멸망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바울과 12제자를 보면" 역시 3년씩이나 예수님 따라다니면서 충성했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부인하고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고 바울도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유황불로 소금치 듯 하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할 것을 보고 전도할 수밖에 없고 타락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입니다. 저는 전도할 때 종종 남의 아이라도 불로 뛰어가는 것을 잡지 않고 바라만보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 악한 사람이 라고 하셨는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 "디모데전서 5: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 하면 믿음을 "배반한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더 악한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겠습니까? 배반의 뜻은 잘 아시잖아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가족이 멸망 받는 것을 보고 그냥 두겠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성도의 영혼을 책임지는 "목사님이면!? 더욱이 오는 세상에서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성령을 가볍게 여기고 저버리고 성도에게 상처 줘서 실족하게 하고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하면 하나님 뜻이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이 점점타락하면 말씀을 왜곡하여 성도를 기만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종이라면 성도가 유황불로 소금 치듯 하는 지옥에 가는데 듣기 싫어서 안 올까봐 "디모데전서 5:20절" 범죄한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이런 설교를 하면 성도들이 안 올까봐 못한다고 하면서 사랑하고 축복한다고 하는 것은 큰 모순입니다. 예예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영적지도자가 의에 길로 인도할 때 비로써 하나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보석 같은 "요한복음 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 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어디나 주도자 협조자 무관심자가 있습니다. 교회도 불의에 협조하고 아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부패 합니다. 교회 일은 당회에서 결정하면 재직회를 반드시 통과해야 집행하기 때문에 주도자는 당회장 협조자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불의에 예하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자고 모의한 것과 동일한 결정이기 때문에 공범이라 볼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울왕은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다윗은 해하지 않았다고 괴변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목사님이 추천해서 결정하기 때문에 성경에 충분히 이해하도록 경고했습니다, "야고보서 3장1절" 그럼도 성경에 위배 되는 일을 하면 삯군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두 번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개척교회는 아부하는 친인척들 때문에 실패하고 그럴 때마다 불의에 저항하면서 어쩔 수 없이 7번이나 교회를 옮겼습니다. 그 후 불의를 감싸준 교회는 결국 물의를 일으켜 많은 성도에게 큰 상처주고 성스러운 교회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키고 도리 킬 수 없는 죄를 범했습니다,
☆ 성직자의 덕목은 영성이고 모델은 사도바울입니다. 어떤 분을 롤모델로 삼고 닳아가려고 힘쓰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존경받는 두 목사님은 말씀도 좋고 청념하고 소박하다고 많은 목사님들이 롤모델 삼고 닳고 싶어 하고 성도들까지 그 교회 다닌다고 하면 부러워하지만 실상은 두 교회성도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1 교회는 역사도 깊지만 수 십년을 성가대까지한 성도가 음주가무는 마음대로 합니다. 또 장로는 정치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매일 같이 광화문 광장에 나갑니다,
2 교회는 장로가 불법 주차하고 번호판 가리려고 종이 찾아다니고 심지어 시장에서 상인과 사람 잘못 봤다고 하면서 다툼하고, 아파트에서 큰 소리 나면 그 교회 권사님 또 수 십년 교회 다니는 집사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장례식장가서 절하고 술 먹는 존경받는 집사님, 또 십년이 넘도록 교회 다니면서 할 짓 못 할짓 다하면서 설교가 듣기 좋아서 다닌다고 하는 중년신사 모두 부러워하는 두 교회 성도들이 사회 생활 실상입니다, 제가 잘 아는 분들이고 눈으로 똑똑히 보고 본인에게 직접 들은 사실입니다. 제가 목사님께 사실을 USB에 담아 건의했지만 감싸고 화살은 오히려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좋은 교회는 죄인 말씀으로 회개 시켜서 거룩한 성도를 사회에 보내는 것이 주님 뜻에 부응하는 좋은 목사와 좋은 교회입니다. 불의에 협조하면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목사님을 사랑하신다면 라만 장군을 구한 소녀가 되어주시고 다윗을 성군으로 만든 나단 선지가 되시는 것이 자신과 목사님과 교회를 정말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죄에서 구원하기는 꺼녕 죄와 불법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여 우리 장래는 암울합니다. 가롯유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명예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면 후세의 장래는 없습니다,
☆ 구원받지 못하면 하나님 진로가 얼마나 무서운지 성경을 통하여 다시 한번 더 알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2:31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 심을 얻지 못하겠고 32절 또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2절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에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29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 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 시켰느니라. "베드로후서 2:6절"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히브리서 10:29절"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말씀만 믿어도 장례식 때 무슨 일을 하던지 천국 같다고 언약의 피를 가볍게 여기며 하나님 뜻이 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성령께서 인도 하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은 좁은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학자들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5만명이 살았다는데 모두 멸망했는데 목사님 마음대로 무슨 일을 하던지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의 뜻은 죄에서 구원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기독교는 위안의 종교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종교기 때문에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면 절대로 타락 하지 않습니다. 성경공부는 하나님 뜻을 알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이미 정답이 다 나와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구원받고 불순종하면 하나님 뜻을 훼방하는 마귀사탄이기 때문에 어떤 댓가를 치르게 하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님 가르침과 12제자와 특히 사도바울이 성경에 낫낫이 기록했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은 목사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수능시험에 아담과 하와가 왜 선악과를 따먹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못가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왜 헤맸는지 문제가 나왔다면 모두 만점 맞고 원하는 대학교 다 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목사님들은 성경을 항상 접하면서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을 저버리고 증언하는 사람을 치리하면 "데살로니가전서 4:8절"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 니라!! 저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죄는 제일 무서운 죄도 인정 하지 않으면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더러 성도를 구원하겠다고 목사가 된 것 자체가 멸망을 초래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신 희생을 만홀히 여기는 근본은 교만과 무지가 멸망을 스스로 자청한 것입니다.
선생된 너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저자 유태구 무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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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귀일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1-5).
이것은 어떤 조직에서 한 가지 문제를 야기할 될 수 있는것입니다.
자신이 맡은 업무를 성공시키는 것은 종종 다른 사람의 성품과 일에 대한 평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상사는 반드시 자기 부하들을 평가해야 하며, 어떤 조직에서는 그 반대이기도 합니다.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를 파트너로 골라야 하며, 누구를 채용하고, 어떤 조직에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러나 5절은 “외식하는 자”라는 단어와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라는 권면 등을 고려할 때,
예수님이 거짓 판단이나 불필요한 판단을 말씀하시는 것이지, 정직한 평가를 금하신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 줍니다.
문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남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속 모습들은, 실상보다는 훨씬 더 편향된 인식에 바탕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스스로에 대해 기분이 좋게 만드는 것을 남들 가운데서 찾거나, 남을 섬기지 않는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우리가 그때그때 느끼는 타인의 인상을 축적해 두는 대신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그들에 대한 진짜 정보를
모으려는 시간이나 태도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판단주의’(judgmentalism)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서로서로의 상사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판단하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그 일에서 내가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거지? 무슨 증거로 내가 그런 결론을 내린 거지?
이런 판단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는지? 이런 판단에 저 사람은 어떻게 대응할까?’ 등의 질문을 함으로써,
동일한 수준의 공평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판단을 바로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우리 인식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물어보는 것이,
우리 눈의 스스로 ‘그 일에서 내가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거지? 무슨 증거로 내가 그런 결론을 내린 거지?
들보를 먼저 빼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교회 내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 사랑의 원리를 강조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서 바울은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말합니다. 갈등 속에서도 사랑은 가장 강력한 해결책입니다.
사랑은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갈등 해결의 핵심입니다. 장로님의 글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