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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은혜나눔] 글빵집_이야기4_돌아온 탕자_2025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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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홍기 |
날짜 | 2025-05-05 |
조회수 | 1547 |
'글빵집'은 브라보 시니어 스쿨 문예창작반의 애칭입니다.
이번 '분당우리지(5-6월)'에 브라보 시니어 스쿨을 소개하는 코너에 실린 문예창작반의 소개 글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예수님)를 줄기차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예창작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ㆍ의ㆍ하ㆍ나ㆍ님을 고백하는 이야기를 자녀와 자녀의 자녀 그리고 자녀의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 주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글빵집은 모든 섬김이가 종업원이며 동시에 주주입니다. 오늘 요리의 주인공 글빵집 강사님의 “돌아온 탕자-렘브란트' 의 명화 해설빵입니다.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1~1669년, 유화, 262x206 cm
에르미타주 미술관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러시아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년)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
네덜란드 바로크 화가
렘브란트는 루벤스와 더불어 네덜란드 바로크 화가의 거장이다. 바로크(Baroque)는 17세기~18세기 유럽의 미술, 건축, 음악 그리고 문학 등을 아우르는 예술 양식이다. 바로크 양식은 군주들이 주도적으로 지원한 궁정적인 바로크와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발현한 부르주아적 바로크로 나뉠 수 있다. 렘브란트는 부르주아적 바로크의 대표 지방인 플랑드르(현재의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면서 절대주의와는 연관이 없는 풍속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등이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 위에서 당대의 다른 어떤 예술가들보다도 회화의 개인적인 면모에 집중하여 젊은 시절에 초상화와 역사화를 통해 부와 명성을 누렸지만, ~~~불우한 말년을 보냈고, “돌아온 탕자”를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그 다음해 1669년에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 말년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오히려 영적으로 충만했던 그의 심정을 ‘돌아온 탕자’에 오롯이 쏟아부었다.
실제 “돌아온 탕자”의 그림의 크기는 골리앗(여섯 규빗 한 뼘_규빗의 대략 크기를 46cm로 보면 대략 3미터)과 맞먹는 2.62 미터 높이에 폭도 중형차 보다 넓은 2.06 미터로서 대형 작품이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벽면에 걸려 있는 “돌아온 탕자”를 직접 마주한다면 아버지의 얼굴(의외로 주위의 인물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빛이 오른쪽 큰아들의 얼굴에서도 보인다.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 그리고 큰아들은 한 가족임을 말해주고 있다)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압도당할 것이다.
‘빛의 화가’로 불리우는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을 절묘하게 배합하는 키아로스쿠로(이탈리아어로 명암대비라는 뜻) 기법을 사용하여 외부로부터 오는 빛의 근원을 사용하지 않고 아버지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진원지로 하여 그림 속의 인물은 물론이고 그림을 마주하는 사람의 가슴과 영혼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영적인 대화를 나누게 한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은 양 한 마리 비유와 열 드라크마 비유에 이어서 나오는 너무나 친숙하면서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탕자는 허랑방탕 하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도 ‘염소 타령’을 한 큰아들이다는 말씀에 공감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아버지의 넓고 큰 사랑을 (두 아들에게) 베푸시는 ‘탕부’라는 관점(헨리 나우엔의 ‘탕자의 귀환’ 참조)의 설교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우선, 미술관에 걸린 대형 ‘돌아온 탕자’를 멀리서 마주하면 아버지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품 안의 아들을 녹여주며 양 손으로 감싸주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 일감으로 다가오며 그 자리에 멈춰 밀려오는 감동을 추스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선이 둘째 아들의 벗겨진 왼 발바닥과 뒷굽이 해어진 오른발 샌들을 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탕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아버지의 오른손과 왼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왼손은 힘줄이 불거진 아버지의 손(아버지의 사랑)을, 오른손은 약간 길쭉하며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듯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가까이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멀리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의 가늘게 뜬 눈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허공을 가르는 마치 맹인의 초점 없는 눈입니다. 이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집 나간 아들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 지쳐서 결국 눈이 짓무르고 쇠약해진 아버지의 ‘애타는 기다림’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빛의 진원지인 아버지의 얼굴에서 전해져 오는 감동을 누리다가 천천히 둘째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면 제대로 깎은 것이 아니라 집에 오기 직전에 부리나케 깎은 것처럼 쥐어뜯긴 머리입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에 자리잡은 태아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있습니다. 이제는 안심하라고 아들의 등을 토닥여 주는 아버지의 양손에서 울먹이며 들썩이는 아들의 어깨로 인해 살짝 떨림이 전해져 옵니다.
둘째는 허랑방탕한 험한 세월을 보냈으면서도 집을 나올 때부터 입었던 겉옷을 팔아먹지 않고 비록 다 낡아 해어졌지만 옷깃은 아직도 아버지의 손목에 새겨진 동일한 문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당시 귀한 가문임을 상징하는 단도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팔아먹어서 없어진 지 오래고 대신 새끼줄로 엮어 만든 허리띠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습니다.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도다고 탄식하면서도 끝까지 팔아먹지 않은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단도를 만지작거리며 아버지의 아들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던 둘째 아들입니다. 그 단도로 비참한 생을 마감하지 않고 스스로 돌이켜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많은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는 징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1636년에 돌아온 탕자를 에칭으로 새겼습니다. 그 당시 30살의 렘브란트는 부와 명성을 누렸는데, 개신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던 플랑드르 지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돌아온 탕자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후로도 허랑방탕했던 시절에 “사창가의 탕자”의 그림도 그렸습니다. 특히, 에칭으로 새긴 그림에는 돌아온 탕자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려고 수많은 터치가 더해졌던 드로잉이 남아 있는데, 30년이 지나서 죽음을 앞두고 렘브란트는 ‘돌아온 탕자“에서는 아예 얼굴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허랑방탕하게 지나온 자신의 삶을 과감하게 묻어버리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품에 안겨 진정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의 만남이 주는 감동을 차분하게 누리다가 오른편에 있는 큰아들에게 눈길이 자연스럽게 향하게 됩니다.
큰아들의 얼굴에도 빛이 있는 것은 아버지의 아들이며, 또한 아버지와 같은 붉은 겉옷을 걸치고 있어 한 가족임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염소 타령‘을 했던 큰아들은 왼손과 오른손을 포개 잡은 모습에서 동생을 강하게 판단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큰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인 각성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지팡이를 집고 있는데 오른발이 없습니다. 큰아들임에도 반쪽 신분임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형제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1) Who killed Abel(아벨)? His bro
2) Who sold Joseph(요셉)? His bros
3) Who expelled Jephthan(입다)? His bros
4) Who was jealous of David(다윗)? His bros
5) Who was not happy with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His bro
이제, 돌아온 동생은 넓고 큰 아버지의 품 안에서 형의 오른발 몫도 감당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누가복음15:22)
in Christ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