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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은혜나눔] 주일설교 |
|---|---|
| 글쓴이 | 허은영 |
| 날짜 | 2025-08-24 |
| 조회수 | 3040 |
삼손의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두 눈이 뽑히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보았네.
교만이라는 벌레가 내 안에서도 꿈틀대니,
내 판단이 옳다 믿으며
고집과 아집을 부리고,
정죄와 남 탓으로 일관하네.
첫사랑을 잃은 채
초라하게 서 있으니
은혜는 사라지고,
하잘것없는 능력만 붙잡는다.
뭐라도 된 양 추태를 부리다
결국 넘어집니다.
주여, 바울처럼
절망의 끝이 오기 전에
빛 가운데 만나 주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손 내미시니—
그 은혜,
어찌 다 말할까.
갚을 길 없어
눈물만 흐른다.
오늘도 받은 은혜
그대로 올려드립니다.
전할 능력 없는 나,
이 큰 은혜는 천국 가야
온전히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복음의 빚진 자.
아무것도 아닌 나,
구원받은 죄인일 뿐.
주여, 날마다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절망의 자리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사사기 16:15~22)
고전문헌학자 배철현 교수의 짧은 강의 중, 울림 있는 한 대목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성경의 인물을 설명하며 사도 바울을 언급했는데,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 믿기 이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은 큰 빛으로 인해 땅에 쓰러지고, 그 강렬한 빛 때문에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강사님이 상황을 영어로 “He saw nothing”(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번역할수 있는 평이한 문장인데)교수님이 반대로 해석 “그가 비로소 nothing을 보게 되었다”라고 해석하여 신선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 확신에 가득 찼던 바울은 그 빛 앞에서 고꾸라지며 ‘nothing’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면이 비워지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 것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는 부르심 앞에서 바울은 질문합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어 “주여, 무엇을 하오리이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없던 질문,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바울이 무너지고, 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고백이 시작된 것입니다.
(빌립보서 3:5~6)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며 자부심에 가득 찬 모습을 보이지만, 주님을 만난 후에는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7~8)라고 고백합니다.한국교회가 살길입니다.결국 ‘nothing’을 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의 결정적인 삶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전의 삼손)
1.힘의 근원에 대한 무지
삼손은 힘의 근원을 드릴라에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힘의 근원이 머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사기 14:6, 14:19, 16:19~20)퀴즈: 삼손이 그힘이 머리에 있다했는데 사실인가?아니얘요.힘을잃은 이유,근거제시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시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미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자기를 몰랐고, 힘의 원천을 몰랐습니다.
2.보여지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나실인의 금기사항은 세 가지였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할 것
삭도를 머리에 대지 말 것
시체에 가까이하지 말 것
다른 것은 다 어기고 삼손이 머리카락을 집착한 이유는 ‘보이는 것’ 때문이었습니다.(보이는 방향)
그러나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우리교회가
하나님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향하길 원하십니다.
3.(영적무지로)하나님이 떠나신 줄도 모르는 둔감함
“여호와께서 이미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 16:20)교회는 다니는데 임재가 없습니다.
이것은 영적 무지입니다.경고의 말씀이 두려움...
요한계시록 2:4“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치명적인 죄성 처음사랑을 지킬힘이 없는자다.
요한계시록3;17”내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분당우리교회 상태아닌가!
요한계시록 3:1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영안이 가려진 채 절망적인 상황 속에 삼손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눈이 뽑힌 후, 삼손의 영안이 열렸습니다.
“주여,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삿 16:28)
이 기도는 단순한 기능 회복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갈망이었습니다.
다윗도 범죄후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라며 하나님의 임재의 목마름이였습니다.
스가랴 4:6“(말씀)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중요한 것 말씀이 임하느냐.이단도 말씀을 가르침.청년도 말씀이 필요.말씀이 힘이되고 능력이 됩니다.
결론
바울처럼 강렬한 빛이 임할 때,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매 예배 때마다 주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마 17:8)
*이 말씀을 부족하지만 정리하면서 놓친 부분을 발견했고, 눈물이 나와 많이 울었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