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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은혜나눔] 주일설교 |
|---|---|
| 글쓴이 | 허은영 |
| 날짜 | 2025-09-15 |
| 조회수 | 2828 |
행복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 진정으로 참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점점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더 기쁘고 감사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춤추며 찬양하며 걸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감당 못할 은혜를 주시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송축해, 내 영혼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주님을 경배해.”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는 자인데…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고자 하는데… 하나님은 항상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우리의 참된 주님, 따를 수 있는 지도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찬양하며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입을 다물게 하신 후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마음과 영으로, 아니, 내 모든 것으로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게 하십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내 옆에 계시는 힘센 용사 (예레미야 20:7~13)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강의를 듣다 보니, 강사님은 어린 시절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들었습니다. 선배가 버리고 간 문제집을 주워 공부했다.
그가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음. 어린 시절의 가난을 오히려 공부하는 에너지로 쏟을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징글징글한 가난이 싫어서(강조) 공부에 전념했고, 서울대에 입학하여 지금은 유명한 강사가 되었다.
Walter Bagehot의 말을 인용. 어린 시절의 자기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인생에서 최고의 희열은 ‘너는 할 수 없어’ — 이렇게 자기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에게 나의 성공으로 복수하는 것이다.”
저는 강의를 들으며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나단 푸시(Nathan pusey)의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흔들 수 있는 깃발, 부를 수 있는 노래, 믿을 수 있는 신조,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 무슨 뜻인지 확 와닿지 않습니까? 청년의 때에는 자기 삶에 동력을 제공하고 활력을 주는 요소들이 필요한데, 흔들 수 있는 깃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어야 됩니다. 청년들뿐 아니라 의기소침한 우리 모두에게 삶의 동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있습니까? 목청껏 부를 노래가 있습니까? 믿을 수 있는 신조,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면…
강의를 들으며, 찢어지게 가난한 그 결핍이 ‘흔들 수 있는 깃발’을 만들 수 있는 거구나! 오히려 가난이 흔들 수 있는 깃발이 될 수 있는 거구나!
여러분, 어려운 역경 때문에 힘을 내지 못내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거거든요.
오늘 본문 말씀을 이런 포인트로 풀어나가려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예레미야 20:8) — 힘든 상태
“내가 입을 열어 말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상황 짐작
예레미야는 말씀을 전하는 이유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말합니다.
그런데 주목하는 게 뭐냐면, 그에게는 어떤 동력이 있어서 아파하는데 쓰러지지 않고, 쓰러지는데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에요. 무엇이 동력이 되었을까? 동력으로 받쳐주던 흔들 수 있는 깃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었을까! 이걸 나누고 싶다.
혹시 사는 게 힘든 분이 계시잖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흔들 수 있는 깃발, 마음껏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다시 찾아내어 활력을 되찾자는 것.
회복을 위한 세 가지 동력
1.하나님께 사로잡힌 삶 (예레미야 20: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었사오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원어로 보면 훨씬 더 강합니다. “내가 주님께 속아서 지금 이 고생을 합니다.” 토로하거든요. 뒤에서 다시 강조하겠지만 어려움을 강조하지만, 예레미야의 역설이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이겼기 때문에 내가 이 고난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원망의 표현이 아니라 뒤로 가면 알게 됩니다.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느냐! 하나님이 나를 이기셔서 이렇게 된 거 아닙니까? 굉장히 인생의 단순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는 삶에 갈등이 없습니다. 20대까지 목회한다고 버텼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이 속에서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 강사도 갈등이 없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 갈등 없음(회의, 우울).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빌립보서 3:12)
여러분, 인생은 뭐가 힘들게 합니까? 상황도 힘들지만 해석 때문에 더 힘든 것 아닙니까! 제가 2학기 시작하면서 여러분께 드렸던(4주 전의) 첫 주, 둘째·셋째 주, 오늘이 넷째 주까지가 한 묶음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 아가서 특새하는 것 전부 맥이 있습니다. 즐기며 시간을 보냈는데요, 오늘 이 시대는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음으로’가 없는 세상, “인간이 하나님을 이겨먹는 시대”입니다.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예레미야가 “하나님이 이기셔서 내가 여기까지 왔다” 이런 고백을 하실 수 있냐고요? 하나님을 이기시는 거 아니냐!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기신다면 불필요한 내면의 갈등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기고 계십니까? “하나님, 저는 낫씽입니다.” 고백해 나갑니다. 여전히 나는 낫씽입니다(야고보서 4:14).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고백 필요. “하나님은 나를 이기셨다.”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이 풀려나갈 줄 믿습니다.
2.말씀에 의한 견인 (예레미야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아마 들어본 적 있으시죠! 뭐가 하나 빠진 표현입니다. 뭐가 불을 붙였냐가 나오거든요.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말씀이 불붙는 것 같아서.” 예레미야는 ‘말씀’이라 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동력을 준 게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하고. 아무리 교회 오래 다녀도 영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어도 말씀을 담고 있지 않으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의지력을 의지하면 초라해질 것 같습니다. 우리를 견인하는 힘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흔들 수 있는 깃발이 되길 원합니다.(예레미야 15:16)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분당우리교회는 밥을 못 먹으니 말씀을 얻어먹어야 되지 않느냐! 말씀을 얻어먹고 한 주를 살아내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3.‘그러하오나’의 반전 — 맨 앞 다시 한 번 보세요(예레미야 20: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굴복했던 동전 이쪽 면. (예레미야 20:11) 동전의 저쪽 면: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진짜 중요한 표현, 양날의 검 같아요. 하나님 앞에 굴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강함을 인정해 드리면 그 하나님의 강하심이 내 원수들과 내게 주워진 상황을 이겨내는 일에 그분의 강함으로 역사하신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이겨먹을 거야, 인형처럼 주머니에 가만히 계시라구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이겨 먹으면 원수 앞에서 힘을 쓸 사람이 없잖아요. 승복하고 나아간다면 강하신 하나님이 11절의 하나님이 되실 줄 믿습니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나단 푸시 말 인용: 우리 모두 “젊은이들에게는 흔들 수 있는 깃발, 부를 수 있는 노래, 믿을 수 있는 신조,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분의 힘을 약화시키면 안 됩니다. 그분의 크신 하나님으로… 하나님은 나를 이기시는 분이 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13:5) “그러하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오늘의 결론은 이 흐름입니다. 8절의 무겁디무거운 인생의 무게감으로 허덕이면서 시작한 본문이에요. (예레미야 20: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이렇게 초라한 시작으로 오늘 본문이 시작되었는데, 본문이 멋지게 결론 납니다.(예레미야 20: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여러분, 갈수록 좋아지면 괜찮은 인생 아닙니까!
숙제 암송: (요한복음 16:33), 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