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고 함께 웃는 분당우리교회

www.woorichurch.org

분당우리게시판

분당우리게시판은 우리교회 성도들의 나눔을 위한 공간으로 실명제로 운영됩니다.
개인의 소소한 일상, 은혜 받은 내용, 감사 내용을 나누어주세요.

제목 [은혜나눔] 왜 우리는 계명이 두 개로 줄었는데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서기가 어려울까?
글쓴이 장순호
날짜 2026-04-11
조회수 1582

왜 우리는 계명이 두 개로 줄었는데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서기가 어려울까?

"율법에 묶인 것도, 율법을 버린 것도,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선다"

20260331

 

미가 선지자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미가서 6:6-7). 이 구절은 간절한 기도가 아닙니다. 미가서 6장 전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법정에 세우는 구조입니다. 선지자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극적으로 대신하면서, 더 많이 드리면 하나님이 만족하실 것이라는 거래적 신앙관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은 짐이 아니라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었고, 예배와 음식, 농사와 거래, 정결과 관계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자리를 채우는 언약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고, 그 많은 계명을 단 두 개로 요약하셨습니다. 이것을 처음 들으면 자연스럽게 '훨씬 쉬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17). 그리고 바로 이어집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하고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1-22).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그나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 분노까지 다스려야 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두 개로 줄이신 것은 완화가 아니었습니다. 겉에서 속으로, 행위에서 마음으로, 요구의 방향을 더 깊은 곳으로 옮기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계명은 왜 주셨던 것일까요. 훗날 랍비들은 모세 오경 안의 계명들을 하나씩 세어 613개로 정리했습니다. 예배와 음식, 정결과 거래에 이르기까지 삶의 구석구석을 채운 그 계명들을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짐이기 이전에 은혜였습니다. 바울은 그 방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갈라디아서 3:24-25). 여기서 '초등교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이다고고스(paidagogos)'입니다. 선생이 아니라, 그리스·로마 시대에 아이를 선생에게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신뢰받는 안내자였습니다. 율법은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이끄는 손이었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이 처음부터 향하고 계셨던 그 자리를 예레미야는 이미 오래전에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33). 돌판에 새긴 율법이 마음판으로 옮겨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처음부터 원하셨던 방향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이 생깁니다. 율법을 가장 열심히 지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들은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었고, 율법에 대한 열심만으로는 당대 누구보다 진지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28). 이것은 바리새인 전체를 정죄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니고데모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던 바리새인도 있었고, 바울도 스스로 바리새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비판은 사람이 아니라 함정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목적지로 삼는 순간 생겨나는 함정.더 많이 지킬수록 더 보여줘야 했고, 더 보여줄수록 마음은 더 멀어졌습니다. 형식은 정교해졌지만, 마음은 공허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다를까요. 예수님 시대에는 형식이 마음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유혹이 있습니다. 사랑이면 된다,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말이 예배 출석, 말씀 묵상, 기도의 훈련,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섬김을 조용히 밀어내고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반율법주의(Antinomianism)라 부릅니다. 바울은 이 유혹을 이미 정확히 짚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6:1-2). 은혜는 순종을 무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순종의 동력이 됩니다.형식이 마음을 대신하는 것도, 마음을 핑계로 형식을 버리는 것도 결국 같은 자리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예수님의 두 계명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이것을 완전하게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613개도, 2개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 앞에서 멈추는 것이 복음의 시작점입니다. 미가서는 이미 그 대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 6:8). 하나님이 처음부터 원하셨던 것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방향이었습니다.더 많이도, 더 적게도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것. 그리고 미가서는 그 다음 절에서 곧바로 이어집니다. 여호와의 목소리가 성읍에 외치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막대기와 그것을 정하신 자를 들을지니라 (미가서 6:9). 8절이 방향을 알려준다면, 9절은 그 방향으로 걷는 첫걸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 겸손히 함께 행하는 삶은 결국 오늘도 외치시는 그분의 음성,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PS

매주 성경을 읽다 보면, 오래된 이야기가 신기하게도 오늘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느낍니다. 이 공간에 올리는 글들은 본문 앞에서 한 사람이 품었던 질문을 따라가며 걸어간 묵상의 방향일 뿐, 확정된 진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성경 본문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지금 우리 시대의 언어로,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로 다가가는 작업이 되기를 바랍니다. 같은 본문을 읽으면서도 전혀 다른 자리에서 다른 울림을 받을 수 있고,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다 보면 말씀은 더 넓고 깊어진다고 믿습니다. 이 과정이 저에게는 더 깊은 이해의 시간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는 한 주간을 살아갈 따뜻한 응원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 나눔을 통해 우리의 묵상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밴드 URL 복사 단축URL 복사
SORT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2876 [은혜나눔] “이상하다… 분명 잘 살고 있는데...” 박 범 삼 2026.05.05766
2875 [은혜나눔] 주일설교 허은영 2026.05.04919
2874 [은혜나눔] 다음세대 청소년을 위한 선포 [2] 성우석 2026.05.04878
2873 [은혜나눔] 실패할  수 없으나 N 장귀일 2026.05.09306
2872 [은혜나눔] 계획은 내가, 인도는 하나님이... 박 범 삼 2026.05.03736
2871 [은혜나눔] 2026.04.26. [주일예배] 베드로전서 4장_ 마지막 때와 청지기 정신 김수진 2026.05.02884
2870 [은혜나눔] 영적인 노크(영적회복을 위한 끊어냄의 이야기) 허은영 2026.05.021137
2869 [은혜나눔] 어떻게 하나님은 우리야의 허락 없이 다윗을 용서하실 수 있는가? 장순호 2026.05.021160
2868 [은혜나눔] 세마포 예복이 주는 의미   장귀일 2026.04.271133
2867 [은혜나눔] 주일설교 허은영 2026.04.271228
2866 [은혜나눔] 왜 하필 그 동굴에서 다윗 왕국이 시작되었을까? 장순호 2026.04.271371
2865 [은혜나눔] 2026.04.19. [주일예배] 베드로전서4장_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들 김수진 2026.04.251334
2864 [은혜나눔]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찬양 연주 합니다. 안철호 2026.04.241157
2863 [은혜나눔] 영상 속에 나온 윤여찬 어린이에게 ^^ [3] 진영석 2026.04.161765
2862 [은혜나눔] 목사님 주일학교 다음세대를 살리겠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 정은경 2026.04.211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