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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난주간 은혜나눔] 짧은 은혜 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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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백종원 |
날짜 | 2025-04-19 |
조회수 | 2125 |
2025년 고난주 예배
하나님께서 감사하게도 내게 이번에는 전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작년에는 직장을 구하는 시기에 제자반 과정을 통하여 듣게 하셨다면 지금은 이직을 준비하는 시기에 고난주 예배에 초청해주셨다.
작년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고난주를 준비하는 마음부터 기대하는 마음 그리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은 비교가 될 수 없을만큼 훨씬 컷다.
고난주 전 주 부터 새벽예배 한구절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어떻게든 내 삶의 가장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다. 그렇게 맞이하는 아침은 그렇지 않은 날과 다르다며 하나님 앞에서 더 준비된 예배자가 되고 싶었다.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월요일부터 넘치는 은혜를 주셨다. 작년과 또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시간이 너무 감사했고 오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제목부터 내게 주시는 말씀인 것 같았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
‘그래, 아주 죽어보자,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인생, 그렇게 청년의 때를 받쳐보자.’ 라며 굳은 결의와 함께 예루살렘 청소를 왜 자꾸 나는 예루살렘 척결이라고 들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굳은 각오는 화요일 점심부터 온데 간데 없고 또 다시 죄를 즐기는 나의 모습에서 월요일에 받은 은혜는 그렇게 무너졌다.
아니, 화요일 아침에 드리는 새벽 예배가 무슨 의미인지 오후만 되면 안간힘을 버티려고 했던 나의 경건한 생활은 사탄이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르르르 무너져 버렸고 화요일을 넘어 이 무너짐의 연속 속에 목요일에는 교회를 가는 길에 엄마랑 싸우고 예배를 드리고 내려오는 길에 또 싸웠다. 나의 은혜가 나가 떨어진걸 떠나서 엄마가 받은 은혜 마저 내가 무너트린 것 같아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자꾸 나는 죄를 마주하며 넘어지는 것일까?’
금요일이 되었다. 말씀 보기를 멀리하고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던 내가, 은혜를 많이 받아 봤자 난 또 넘어질 것 같았기에 예배 드리러 가는 것 보다 친구 생일 술자리를 가는게 어떨까 라며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많이 사라졌었다. 은혜를 많이 받으니 자꾸만 사탄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았고 그러다가 넘어지니 내가 또 죄인임을 보게 되고 어제도 그제도 심지어 오늘도 거룩하게 지키려고 했던 나의 마음과 결심은 한 없이 참 가벼웠다.
“거봐, 너 어차피 오늘 가서 은혜 받으면 또 넘어질건데, 뭣하러 가. 차라리 술 마시러 가.”
그럴싸한 명분, 나의 죄성을 마주하는 불편함, 또 똑같은 죄에 넘어지는 연약함. 이 모든 것을 내가 나를 바라보는 허탈과 혐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면 얼마나 아파하실까 라는 걱정과 두려움.
‘종원아, 너 이 기간이 어떤 기간이지 알면서… 왜그러냐…’ 라며 실망할 것 같은 모습에 나도 내 모습 보기가 참 거북했다.
나의 죄를 이미 아시고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선 날 계획 하셨다는데, 계획 하시다가 혹 잘 못 계획하신 것은 아닌건지, 나는 참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동탄에서 올라가는 5시 경부 고속도로는 나를 시험하기엔 너무 좋은 환경이였다. 요리 조리 왔다 갔다하는 자동차,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SUV, 무섭게 뒤에서 쫓아오는 대형 트럭과 줄줄이 길을 가로막는 서울행 광역 버스들, 제일 피하고 싶은 시간 때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의 손과 흔들린 동공속에 은혜에 대한 사모함은 점점 줄어들었다.
“은혜 적당히 받아야지.”
역시, 예배는 좋았다. 찬양, 말씀, 기도…
‘하지만 주님, 저는 저 문 밖으로 나가면 또 어떤 죄를 지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참 두렵습니다. 죄를 지을수록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고 그럼 내가 이 자리에 뭣하러 나왔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너무 많은 은혜 주지 마세요.’
말은 이렇게 해도 매일 6시반에 와서 하나님의 전에 거하려고 최선의 모습으로 나아오려 했던 나. 목소리 높여 찬양하며 말씀을 보며 새벽 예배로 하루를 시작했던 나, 앞자리에 앉기 위해 일찍이 집을 나서 먼저 준비하려 했던 나. 은혜를 적당히 받고 싶어하기엔 너무 억울했다.
그렇게 언짢은 마음으로 부활절 예배가 끝났고 지체들과 깊은 밤이 되어서까지 나눔을 하며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에 일상에서의 삶도 거룩한 모습으로 잘 지냈고 은혜를 받았다면…?
어쩌면 내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는 바리새인이 아니였을까?
행함으론 거룩하게 지키며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나, 하필 또 앞자리인지라 카메라에 많이 잡혀 예배가 끝나고 나면 “너 오늘 많이 잡혔더라?” 라며 내게 말을 건낸 지체들. 나의 예배는 얼마나 거룩하게가 아니라 얼마나 거룩하게 보이게끔 드리냐가 먼저 앞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매일 예배의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함이 아닌 예배당에 내가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 더 예배하는 척을 통하여 나의 경건됨이 자랑이 되진 않았을까?
5일동안의 부활절 예배를 통하여 내게 주신 은혜는, 얼마나 많은 감격이 있고 눈물을 흘렸으며 얼마나 큰 소리로 찬양을 했는지가 아닌 이런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담대함으로 예배 자리 가운데로 나아오는 것이였다.
죄인인 내가 이 자리에 나아올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이, 그 죽음이 사랑이였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은혜였다. 그래서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한 주였다.
그래서 웃프게도 난 이번주 주일 예배를 더욱 더 사모하게 된다. 이 은혜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까.
난 나뭇가지고 나무에 붙어 있기 위해 오늘도 애쓰며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예배자가 되길 내 죄와 싸우며 오늘을 살아낸다.
하나님, 참감사합니다. 이런나에게십자가의보혈로덮어주심에진심으로감사드리며, 저또한하나님을사랑합니다. 정말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