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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고난주간 은혜나눔] 특새본문 아가7:10-13 묵상 -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
|---|---|
| 글쓴이 | 송현석 |
| 날짜 | 2025-10-14 |
| 조회수 | 4078 |
「당신의 사랑은 성장하고 있습니까?」
아가 2장
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6장
3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아가 7장
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11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12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13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1. 방향을 바꾸는 사랑 - 새로운 방향에 대한 감탄
설교를 들으며 가장 놀랐던 부분이 아가 2장과 6장과 7장에서 술람미 여인의 태도의 변화. 나는 왜 이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을까? 아가 2장과 6장의 같은 구절을 분명히 비교하면서도 사랑의 본질이 안다는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집착했던 것이 아닐까?
*아가 7장 이전 묵상
20250719 아가 7장 - 사모함과 속함과 앎, 사랑의 본질 III
https://blog.naver.com/joeyhsong/223939192247
술람미 여인을 이렇게 바꾸는 원동력은 신랑의 사랑. 그렇다면, 술람미 여인의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길래 술람미 여인은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진정한 사랑의 태도와 자세를 삶 속에 새기게 되었을까?
그 변화를 보여주는 자세히 보여주는 것은 모두 술람미 여인의 아가 시편 대사들. 오늘 본문 아가 7장 10절-13절은 모두 술람미 여인의 대사. 아가 2장 10절 및 16절, 아가 6장 3절도 모두 술람미 여인의 대사
술람미 여인의 7장 10절에서 13절까지의 말은 사실 아가 2장에서의 신랑의 말과 거의 동일함
아가 2장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아가 7장
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11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12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13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사랑이 가장 먼저 바꾸는 것은 바로 말이라 묵상.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따라하게 되는 것이라 느낌. 그렇기에 신랑의 사랑을 흠뻑 받았음에도 그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했던 술람미 여인은 아가 시편의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을 거치며 신랑의 사랑을 확증하게 되고 이에 가장 먼저 그의 말이 바뀌게 된 것이라 묵상
말이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신 바, 술람미 여인의 말이 바뀐 것은 곧 그녀의 마음이 바뀌었음을 확증하는 것. 그렇기에 사랑이 무엇을 바꾸었는지를 굳이 순서를 정해 이야기한다면, 마음이 먼저 바뀌고 그 영향으로 말이 바뀐다고 보아야할 것. 바뀌는 구체적 실체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 말이 같이 바뀌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나도 따라하게 되는 것이라 묵상. 이는 또한 사랑의 본질에 충실한 현상, 즉, 온전하고 완전한 마음의 공감을 동시에 확증하고 있는 것
술람미 여인이 아가 7장에서 신랑의 마음을 모두 공감하고 있었음을 관찰할 수 있는 대목은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아가 2장과 6장에선 신랑이 무엇을 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어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7장에서 신랑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음. 즉, 7장에 와서야 비로소 신랑의 마음을 깨닫게 된 것이라 묵상
한편, 술람미 여인의 마음이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가 또한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라는 인식과 인정이라 묵상. 술람미 여인의 아가 7장 10절-13절 대사 중 가장 처음에 나타나는 이 고백은 창세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을 뒤집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음
창세기 3장 16절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가 7장 10절의 '사모'와 창세기 3장 16절의 '원함'은 같은 히브리 여성 명사 STRONG 8669 '테슈카ㅎ תְּשׁוּקָה'. 의미는 단 하나. '갈망'. 이 명사는 흘러넘친다는 의미의 히브리 동사 '슈크/슠 שׁוּק'에서 유래. 뒤이어 계속 몰려온다는 의미.
선악과 사건의 죄악으로 인해 여자에게 생긴 결과 중 하나가 바로 남편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었음. 즉,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본성을 지니게 된 것이라 생각하던 술람미 여인은 아가 시편에 기록된 과정을 통해 사실은 신랑이 자신을 먼저 사랑했다는 진실을 인식하게 된 것. 그러므로 자신의 사랑이 본성에 의한 비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을 깨뜨리시는, 즉, 먼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자 자기에게 씌워져 있던 내 죄성의 굴레가 깨어지고 그로 인해 죄성으로 인한 비자발적인 본성 역시 같이 깨어져 자유케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 그래서 내 안에서, 내 마음에서 흘러 넘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어쩔 수 없는 죄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주신 먼저 하신 사랑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라 묵상
내가 어쩔 수 없이 신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나를 죄성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셨기 때문에 나도 그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음을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라는 감탄문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라 묵상. 신랑의 먼저 베푼 사랑은 결국 죄성으로 인해 결정된 방향을 바꾸어 그가 나를 먼저 사랑하심을 깨닫고 그로 인해 내 안에 사랑이 흘러 넘치게 되는 것
이렇게 죄성의 굴레에서 자유케 되자 죄책감에서도 벗어나 결국 적극적 행동의 주체가 되어 신랑이 자신에게 제안하는 것처럼 술람미 여인도 적극적인 태도로 신랑에게 우리라 칭하며 권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묵상. 그렇기에 제안의 방향도 사랑이 바꾸어 놓았음을 확인
더 나아가 술람미 여인을 자신의 마음 속에서 흘러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가 2장에 기록된 신랑의 말에 더해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라며 자기 자신만의 말을 추가할 수 있게 되었음. 이는 또한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의 댓구로도 나타나고 있다 묵상. 이제는 신랑의 말만을 따라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말을 신랑에게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임을 확증하고 있음
2.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 = 새 것과 묵은 것으로 마련된 여러 가지 귀한 열매
인간은 공간을 이동할 순 있지만, 시간을 뛰어넘을 순 없는 존재. 그러나 오늘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시간도 뛰어넘는 본질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 바로 '새 것과 묵은 것으로 마련된 여러 가지 귀한 열매'.
이 기록에 나타난 바, 그냥 열매가 아니라 귀한 열매.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라 각기 열매의 종류에 따라 보존 방법과 가장 맛 좋은 시기가 다를 것임이 분명함. 술람미 여인은 귀한 열매들을 각각의 최상의 상태로 신랑에게 제공하기 위해 각 조건에 따라 어떤 것은 새 것으로 어떤 것을 묵은 것으로 이미 마련했음을 암시하고 있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술람미 여인에게는 감추어진 은밀한 비밀을 먼저 하신 사랑으로 인해 알 수 있었던 것. 아마도 신랑이 알려주지 않았을까?
아가 시편의 7장 13절의 이 기록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오랫동안 묵상해 왔지만 그 의미를 뚜렷하게 깨달을 수 없었던 마태복음 13장 52절의 기록
마태복음 13장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시편 78편 2절)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36 - 50 예수 그리스도의 가라지 비유 설명 + 천국의 세 가지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진주/ 바다의 그물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라 칭하시는 사람이 바로 술람미 여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서기관이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 다시 비유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 그렇다면 그 곳간에서 내오는 것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13장 25절에 기록된 '창세부터 감추인 것'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술람미 여인은 신랑으로부터 먼저 베푸신 진정한 사랑에 힘입어 그 사랑을 인지하고 인정함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서 흘러 넘치는 사랑을 다시 신랑에게 돌려드리는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의미하는 바를 삶 속에서 사랑을 확증하는 증거들로 수확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열매들은 때로는 새 것이 최상인 상태이며, 어떤 열매는 지난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만 수확할 수 있는 것이어서 묵은 것이 최상의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으로서의 자격을 술람미 여인이 갖추게 된 것이라 묵상
이 묵상을 열매의 대표적인 성경 구절인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와 빛의 자녀의 열매로 다시 묵상해 봄
갈라디아서 5장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에베소서 5장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사랑과 희락과 절제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 새 것으로 내어 놓는 것이 가장 최상의 귀한 열매라 본다면, 오래 참음과 충성은 언제나 시간 만이 이들의 진위 여부를 가려주는 것이기에 묵은 것으로 내어 놓는 것이 가장 최상의 열매가 볼 수 있지 않나 느낌. 마찬가지로 빛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확증하는 세 열매 중 착함은 언제나 당한 상황과 조건에서 내어 놓는 것이기에 새 열매가 최상의 귀한 열매가 되는 반면, 의로움과 진실함은 시간의 세례를 받아야만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기에 묵은 열매가 최상의 것이 되지 않을까 느낌
한편으론, 귀한 열매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새 열매이며, 또한 아무리 금방 맺었어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것과 같은 묵은 열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묵상. 그것이야말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으로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의 귀한 열매이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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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모하는구나! 라는 감탄을 하게 되는가?
나는 나를 사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감탄하며 맛보아 아는 경험이 있나?
나를 사모하시는 순간에 기뻐 감탄할 수 있을 정도의 믿음과 갈망을 나는 지니고 있나?
나를 사모해 주시기를 나는 갈망하며 예배와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양과 감사로 간절히 원하고 있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모와 사랑에 대한 갈망이 내 안에 흘러 넘치고 있나? 그의 사랑이 내 안에 흘러 넘치고 있나? 흘러 넘쳐 어디로 흘러가고 있나? 흘러 넘친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드리고 있나? 이를 어떻게 확증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