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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가을특새 은혜나눔] 고난주간묵상 9/17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죽음 |
|---|---|
| 글쓴이 | 송현석 |
| 날짜 | 2026-03-25 |
| 조회수 | 6686 |
묵상 길잡이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셔서 사람들 가운데로 오셨고, 끝내 가장 낮은 자리인 십자가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자신을 보존하는 길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길이었습니다. 배척과 오해와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기 생명조차 붙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걸어가신 길은 철저한 자기 비움, 곧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 분의 부르심은 언제나 우리를 그 죽음의 길로 이끕니다. 갈릴리의 제자들은 삶의 터전과 생업을 내려놓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반대로 루터는 수도원의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복음을 위해 다시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갔습니다. 한 쪽은 일상의 기반을 내려놓는 죽음이었고, 다른 한쪽은 종교적 안전과 경건의 보호막을 내려놓는 죽음이었습니다.
집과 생업을 내려놓았던 제자들처럼, 수도원의 보호막을 떠났던 루터처럼, 따름은 언제나 각자의 자리에서 옛 사람이 무너지는 사건을 동반합니다. 세상 속에서든 교회 안에서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 중심적 욕망과 명예, 그리고 안전을 붙들고 있던 옛 자아가 십자가 앞에서 해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묵상 일기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적어보세요.
행동하는 믿음, 내가 가장 존경하는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님은 자신의 삶으로 믿음을 확증한 사람이었다. 이 분의 설교가 오늘 내게 주는 가장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혼자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을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오르셨다는 진리다. 나 혼자만 죽었다면 멸망으로 끝나 버렸을 이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죽음이 나의 옛 사람의 죽음으로만 한정되고, 나에게 주신 새생명으로 부활과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기쁜 사건으로 변화시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함께 나의 옛 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나를 새로이 창조하시는 이 구원의 섭리를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구원 섭리는 그저 은혜와 사랑의 깊은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주신 새 생명과 에우다이모니아의 기쁨을 누릴 수 밖에 없다고 나는 느낀다.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대견하게 여긴 모든 것들이 갑자기 덧없어지고 헛되며 허망하게 느껴질 때, 그 때가 바로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만지시고 터치하는 순간이라 느낀다. 동시에 더 높고 고상한 삶의 목적와 의미와 이유가 나의 주님으로 부터 내게 임할 때, 그 때가 바로 내 새 생명의 시작점이라 나는 묵상한다.
빌립보서 3장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또는 교제)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또는 위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겟세마네의 기도를 떠올린다. 그가 십자가에 오르기 전 죽게 되기까지 고민하셨던 흔적을 읽으면, 나에게 주시는 구원 섭리라는 선물이 얼마나 큰 댓가를 치르고 주신 것인지 미천한 나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 위대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고작 내게 이미 주신 내 생명과 삶 뿐이라 죄송스럽기만 하지만, 내가 대견스러워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모든 것을 아까워하면서도 아낌없이 드릴 때 구원을 내게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내가 드릴 수 있는 나름대로의 최고의 선물을 드리는 것이라 묵상한다. 드릴 때 아깝지 않다면 과연 그것을 진정한 선물이라 할 수 있겠나?
오늘의 적용
옛사람을 떠나기 위해, 내가 떠나야 할 익숙한 울타리는 무엇입니까?
내가 자랑삼았던 이생의 자랑들. 내가 사람들과 세상을 대할 때 가장 먼저 꺼내 놓았던 모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