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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고난주간 은혜나눔] 고난주간묵상 17/17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
|---|---|
| 글쓴이 | 송현석 |
| 날짜 | 2026-04-03 |
| 조회수 | 2294 |
묵상 길잡이
벨라스케스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1632)는 성금요일을 설명하지 않습니 다. 대신 우리를 깊은 침묵 속으로 이끕니다. 화면은 거의 비어 있습니다. 군중도, 풍경도, 드라마도 없습니다. 캄캄한 배경은 마치 모든 소리를 흡수하듯 뒤로 물러나고, 그 어둠 위에 오직 십자가와 한 몸만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철저한 고요를 위한 선택입니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남은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습니다. 주변이 사라질수록 십자가는 더욱 또렷해지고, 우리는 그 중심 앞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이 그림의 고통은 과장되지 않습니다. 상처와 피의 흔적은 분명하지만 시선을 붙잡아두는 자극적인 연출로 번지지 않습니다. 대신 빛이 몸을 조용히 더듬듯 지나가며 고통을 과장하지 않고 묵묵히 드러냅니다. 성금요일의 슬픔은 종종 격렬한 장면 속에서 소비되지만, 벨라스케스는 그 반대편을 택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더 크게 울어라’가 아니라, ‘더 오래 바라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침묵 속에서 마음이 열립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앞에 서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이 십자가를 덮어 왔는가.’
‘무엇으로 이 침묵을 피하려 했는가.’
묵상일기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적어보세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단연코 누구보다 좋아하는 화가인 벨라스케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그렸다. 다른 화가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그의 놀라울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과 또한 비할 데 없는 겸손함과 그로 인한 끝없는 훈련과 고민의 절정이 바로 이 그림에 녹아들어 있다 느낀다.
벨라스케스는 마치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이 너의 구원의 댓가다'. 하얗게 식어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 이제는 신체활동이 완전히 정지되어 출혈마저 멈춰버린 그 순간, 나를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섭리는 완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멈추는 순간, 내게 주신 새 생명의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죽은 존재가 단지 인간 예수일 뿐이었음을 꼭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라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죄패에 다른 작가들의 작품처럼 로마어, 라틴어 약자인 INRI라고만 써 넣지 않고 성경 말씀대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로 정확하게 그의 이름을 작품 속에 영원히 새겨 넣었다. 죽은 것은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이시지만, 내게 새생명을 주신 그리스도,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것을 작품에 지워지지 않고 지나칠 수 없도록 분명하게 그려넣고 써 넣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쓴 죄패를 유대인들은 '자칭'을 추가해 달라 빌라도에게 청했지만 그는 거절하며 쓸 것을 써 넣었다며 고치지 않았음이 성경 기록에 남아있다.
벨라스케스에게 예수는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왕이셨고, 평생 왕정 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왕이란 어떤 존재인지 가장 가까이에서 평생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이 작품에 써 넣은 성경 말씀에 따른 이 이름은, 왕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평생의 실경험이 함축된 이름이기도 했다.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의지 발현과 성취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오직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심을 벨라스케스는 작품으로 고백하고 있다 느낀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그의 의지와 의도와 뜻과 목적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되었고, 아직도 부활을 향해 완성되어가고 있으며, 벨라스케스와 나의 삶을 통해 온전하게 이루어짐으로 거침없이 그러나 오늘 그림처럼 조용하고 잠잠히 나아가고 있음을 그는 이 그림으로 표현했다 느낀다.
힘없고 연약한, 흠모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지니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죽어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유대 청년을 그린 장면이 어떻게 위대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완성을 의미하는지 벨라스케스는 아무런 설명없이 묵묵히 내게 제시하고 있으며, 나는 그의 깊디 깊은 마음과 느낌과 아픔과 사랑을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의 이 위대한 작품과 훨씬 더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섭리 앞에서.
오늘의 적용
잠시 눈을 감고 십자가를 떠올려 보십시오.
많은 말들을 떠올리는 대신 그저 그 앞에 조용히 머물러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