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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한구절은혜나눔] 260415 창세기 18장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
|---|---|
| 글쓴이 | 송현석 |
| 날짜 | 2026-04-16 |
| 조회수 | 1487 |
본문 개요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대접하며 이삭의 출생 약속을 재확인 받습니다. 그리고 소돔 심판을 두고 하나님과 끈질긴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오늘의 한 구절
[개역개정]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새번역]
32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한 구절 묵상
자칫 무례해 보일 수 있는 이 끈질긴 협상에서 하나님은 노하거나 거절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간청을 수용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끝없는 기다림과 그 성읍을 구원하고자 하는 애끓는 자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아브라함보다 더 간절하게 그 성읍을 멸하지 않아도 될 의인들을 찾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반응할 의인들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그 애끓는 시선 앞에, 나는 오늘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묵상질문
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교훈 또는 감동은 무엇인가요?
오늘 창세기 18장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시는 장면을 다시 한 번 기록하고 있음. 그리고 직접 말씀하셨음을 하나님의 말씀마다 '이르시되'로 기록해 놓고 있는 것. 이는 아브라함의 꿈이나 환상에서 등장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의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이르시되'의 히브리 원문 어휘는 동사 STRONG 559 '아마르 אָמַר'. 의미는 '말하다, 언급하다, 대답하다, 지정하다, 부르다, 확증하다, 명령을 내리다, 선언/선포하다' 등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 확실한 것은 입으로 말하는 기본 행동이 의미의 근간이 된다는 것. 창세기 17장에 이어 또 다시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신 것이라 느껴지는 기록
창세기 17장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그러므로 '이르시되'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에 와서 직접 하신 말씀을 가감없이 기록해 놓은 성경에서도 매우 희귀한 경우. 특히, '사람 셋'이라는 2절의 기록을 근거로 사람의 형태로 임하셨음을 알 수 있음. 이 역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 느낌. 특히 창세기 17장의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와 창세기 18장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기록과 비슷하게 느껴짐.
마가복음 16장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누가복음 24장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어떤 사본에는 괄호 내 구절이 없음)
사도행전 1장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제 18 장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신 결정적 장면을 기록한 말씀. 5절과 9절까지는 그들이 말씀하신 장면을 기록하고 있고, 10절 이 후로는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음. 사람 셋 중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셨다고 33절에 기록했고, 나머지 두 사람이 소돔으로 간 것을 창세기 19장에서 확인할 수 있음
창세기 19장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냥 두 천사가 아니라 정관사를 포함한 표현인 '그 두 천사'. 즉, 앞서 창세기 18장에 기록한 바로 그 두 천사라는 구절이 포함된 문장으로 창세기 19장을 시작하고 있음. 이유는, 1절 이전에는 '그 두 천사'를 받을 문장이 없기에, 창세기 18장의 나머지 두 천사를 가리키기 위함이라 추정 가능
-이렇게 육신, 즉, 사람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모습을 읽으며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충분한 확증으로써 볼 수 있다 느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최초가 아님을,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하게 됨.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를 확증으로 작용하는 것이기에, 이 기록의 목적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하심의 확증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창세기 19장의 롯은 바로 아브라함에게서 손님 대접하는 전통과 교육을 받고 배웠으리라 느끼게 되는 기록. 또는 나타난 사람 셋 중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계셨음을 창세기 17장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도 추측 가능. 어느 쪽이 정확한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양 쪽의 이유가 모두 성립하는 것은 사실
-나는 과연 세상과 사람들 틈에 살면서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내게 보내주신 나그네들을 잘 섬기며 대접하고 있나? 믿음의 공동체에서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의 수발을 들며 발을 씻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살아내고 있나?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종류의 식재료로 정성껏 준비하는 모습. 놀랍게도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음식을 드시는 장면이 확증하고 있음.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음식을 드신 장면과 똑같다고 느껴짐
누가복음 24장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 (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왜 성경을 창세기 17장과 18장에 똑같은 사건을 두 번 기록할 까?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두 번 아브라함에게 오셨기 때문. 성경에서 두 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묵상. 아담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한 새 생명의 부활, 노아의 홍수 사건을 통한 두 번째 생육과 번성의 기회,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다는 말씀을 두 번이나 찾아와 말씀하신 사건들, 한 번 깨뜨린 돌판과 모세가 만들어 간 돌판에 두 번 계명을 새겨 주신 것, 요셉을 통해 해몽하게 하신 꿈을 두 번 꾸게 하신 것 등등 성경에는 곧 일어날 확실한 일에 대한 두 번의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기록되고 있음
-내게는 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새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의 예표가 느껴짐
-그렇기에 사라가 웃는 것을 포함하여 이삭의 출생에 대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예언과 그 반응을 똑같이 두 번째 기록한 오늘 창세기 18장의 기록도 내게는 새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사건에 대한 예표가 아닐까 느껴지게 되는 것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앞서 묵상한 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 모습을 보이시며,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한 관계임을 기록했다 묵상. 이런 개인적이고 은밀하면서도 친밀한 관계의 결과는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그로 인해 복을 받게 되는 것. 이 말씀의 첫 번째 확증이 바로 소돔이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 아브라함이 아니었다면, 결국 멸망하긴 했지만, 소돔은 두 번째 기회를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을 것이며, 롯의 가족도 구원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 묵상.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은 그렇기에 곧 구원 섭리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구원보다 더 큰 복은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 즉,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세고 영향력이 크고 명예와 유명세가 높아도 죽음과 멸망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
-19절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의 정의에 대해 기록하고 계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것이라 말씀하심. 즉, 믿음으로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 내게는 이런 일련의 행동이 복을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라, 그렇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것이 바로 복 그 자체라고 느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과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어떤 것에 삶의 목적과 의미와 이유를 둘 수 있겠나? 모두 멸망할 허망하고 덧없는 것들 뿐인데?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이런 관계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선 극비 소돔 멸망계획을 알려 주심.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오셔서 그의 사자 둘을 소돔으로 보내시는 장면을 보여주심
-사실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는 잘 모르겠음. 그러나, 결국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밖에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는 볼 수 있다 느낌. 또한 보내신 두 천사를 통해 롯의 가족이라도 구원하신 것 역시 목적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이 사람 셋을 굳이 이 땅에서 보게 하시고 기록에 남기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느낌. 그저 막연한 추측만 가능할 뿐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서 자신이 직접 받은 복을 사용하여 성경 역사상 가장 먼저 구원의 복을 간구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간구는 자신의 이득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 내게는 이 간구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확증이라 느껴짐. 이는 사도 바울의 서신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
고린도전서 10장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소돔을 구하기 위해 취한 말과 행동은 파격적이었으며 실상 자신의 목숨을 거는 수준이었다 느낌. 어떻게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부당하다고 그 자리에서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하며, 건방지게 정의를 행하라고 충고까지 할 수 있나? 이는 아브라함의 절박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며, 이에 여호와 우리 하나님깨서 괘씸하다 아브라함을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으신 이유는, 바로 그 아브라함의 절박한 마음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라 묵상
-아브라함의 믿음이 여기서 다시 한 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공감하는 것을 통해 확증되는 장면이라 묵상
-나는 나의 간구를 묵묵하게 들어주시는 응답을 받을 정도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죽어 가는 영혼에 대한 안타깝고 절박한 마음을 공감하는 삶을 과연 살아내고 있나?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의 믿음의 확증은 또한 철저한 자기 정체성의 고백으로도 드러나고 있음. 비록 앞서 감히 창조주에게 부당하다 두 번이나 반복하고, 정의를 행하시라는 같잖은 충고를 한 아브라함이지만, 이는 자신의 교만과 자랑과 자기 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필사적이고 절박한 마음을 공감한 것임을 증명하는 말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음. 바로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라는 처절한 자기 정체성의 고백. 오늘 수요 예배 설교 본문 시편 62편에서도 똑같은 다윗의 고백이 나오고 있음. 다윗 역시 아브라함 못지 않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요, 그의 마음을 너무나 깊이 공감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시편 고백이 가능했으리라 묵상
시편 62편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지난 아가서 특새 설교에서 말씀하셨듯, 인간은, 그리고 나는 한낱 입김, 헤벨에 불과한 존재라는 진리를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우리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지 못한다면, 나는 진정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오늘 본문과 시편이 내게 보여주고 있다 묵상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구원의 기준 오십명을 열명까지 줄여 소돔의 구원 기회를 확장하지만, 의인 열 명도 없었던 소돔은 결국 멸망하게 됨. 그렇다면 누군가 아브라함의 노력 부족이 아니냐 책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느낌.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의 잘못이나 실수가 아니라, 죄악을 저지른 당사자인 소돔의 온전한 책임이라 느낌. 왜냐하면, 소돔의 구원 기회를 아무리 확장해도 아브라함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하나도 없기 때문. 이미 소돔 왕을 이전 전쟁에서 다섯 왕으로부터 구원하고 되찾아온 모든 재물과 사람들을 아브라함, 당시 아브람은 단 한 푼의 댓가도 받지 않고 모두 되돌려준 바 있었고, 이번에도 똑같이 행동하고 있음. 내게는 이것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게 된 이유가 아닐까? 구원 섭리를 자기 유익의 도구로 절대로 취하지 않는 것. 똑같은 내용을 사도 바울도 기록한 바 있음
디모데전서 6장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헬, 건전한)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2. 오늘 내가 속한 가정, 직장, 공동체 속에서 나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계실까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것,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
내 삶의 모든 것 되시는 분께서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내 삶으로 확증하는 것. 즉, 예배와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양과 감사가 내 삶의 최우선이자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요 이유요 의미가 된다는 것을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삶으로 확증하는 것
심정이 통하는 기도
주님, 오늘 제가 머무는 모든 영역 안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구원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 - 가정예배팀
가정예배를 통해 각 가정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게 하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여 오직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도저히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 살아계시고 저의 옛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혀 완전히 죽어 빛의 자녀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살아내도록 제게 힘과 용기와 지혜와 기쁨과 사랑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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