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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한구절은혜나눔] 260909 마가복음 9장 - 권능으로 임하는 것 |
|---|---|
| 글쓴이 | 송현석 |
| 날짜 | 2026-09-09 |
| 조회수 | 2354 |
본문 개요
주님은 변화산의 영광이 걷혔을 때, 오직 예수님만이 남았음을 보여주시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의 한 구절
[개역개정]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새번역]
8 그들이 문득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한 구절 묵상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제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변화산에서의 강렬한 경험은 곧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의 본질이 어떤 특별한 체험이나 신비로운 경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무엇에 마음을 기대고 있나요? 특별한 경험이 사라진 뒤 오직 예수님만 남았던 것처럼, 고요한 순간 속에 머물며 주님과 깊이 교제했던 그 사랑의 기억을 의지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묵상질문
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교훈 또는 감동은 무엇인가요?
제 9 장
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많은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로부터의 압제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다윗 왕조의 위대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 그러나 그런 일을 이루시는 메시아는 우상 공장인 자기가 속한 민족 유대인으로서의 마음에서 만들어낸 우상일 뿐임을 우회적으로 지적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임을 주기도문의 가장 첫 문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해주시고 계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그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고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의 뜻은 그가 창조하신 온 우주, 주기도문처럼 하늘과 땅에서 언제나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본다고 말씀하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믿는 자들만이 그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했다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성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완전히 이루어졌으며, 실로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피와 물을 다 쏟고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으로 구원의 섭리가 완성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이 땅에 임하셨음을 인정하는 자들이기에 그렇게 복음서에 기록해 놓으신 것이 아닐까?
-결국 마가복음 9장 1절은 성도의 마땅한 모습과 자격과 증거를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로 열고 있는 것이라 느낌. 이런 관점에서 나머지 마가복음 9장 전체를 보라고 지침을 주신 것이라 느낌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와 지금 함께 한다해서 그들이 모두 성도는 아니라는 뼈아픈 진리를 드러내시는 것이라 느낌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실 것이라는 첫 번째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라는 진리. 이를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나타나심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가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며 그의 말을 반드시 들어야한다는 선포와 명령으로 증명하시고 확증하심. 아버지의 말씀이 들리 때 나타난 구름은 바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며, 모세의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 전체를 낮 동안에 이끌던 표식이기도 한 것. 이는 구원의 섭리의 방향에 대한 표식이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느낌
-왜 모든 사람 앞에서 이런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만 보이셨을까? 믿음이란 눈 앞에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 변화된 모습을 보이실 수 있는 대상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 뿐임을 보여주시는 것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바로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을 살리실 때 대동하신 제자들. 이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까지 살리셔서 죽음의 권세가지 무력화시키시는 분이라는 진리를 체험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변화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이미 알고 있었음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 엿새 후에 변화산에 가신 기록을 남긴 이유는 무엇인가? 일주일이라는 시간 내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표로 주신 것이 아닐까? 고난 주간의 진정한 의미를 여기에도 심어놓으신 것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 중 가장 극적인 변화는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라고 기록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께서 이 땅에 오신 유일한 이유가 바로 더러운 나의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것임을 보여주는 예표라 느낌. 그리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같이 보여주는 것이라 느껴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하필이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타나셨을까? 실제로 복음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많이 인용하신 성경 저자는 다윗과 이사야 아닌가?
-내게 모세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 숭배를 보고 깨버린 인물. 이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죽음을 맞은 첫 번째 아담의 예표라 느껴짐. 이 돌판을 깨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 십계명을 어긴 죄악으로 몰살 당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고 두 번째 돌판, 즉, 두 번째 아담의 예표를 만든 인물이 모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나타난 것이 아닐까? 또한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안 놋뱀을 만들어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지도자이기도 한 것. 또한 모세는 지도자나 왕이자 선지자이자 제사장 역할을 한 인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 반차의 대제사장이심을 예표했고 지도자이시자 또한 예언을 하신 선지자로서의 면모까지 예표한 인물이기에 변화산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엘리야는 바로 이어지는 본문에서 세례 요한을 의미하기도 한다 느낌.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먼저 알리는 역할로서의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는 예언의 성취임을 보이는 것이라 느낌 이는 또한 구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가장 먼저 말한 모세와도 공통된 특징. 또한 엘리야는 마지막 선지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세례 요한이 다시 온 것이라는 의미와도 부합하는 내용. 엘리야는 그러므로, 세례 요한을 의미하면서도 예언이 이로서 모두 완성되었고 또 다른 더 이상의 예언은 없다는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예언한 모세와 함께 나타내고 있다 느낌
*변화산 묵상에 대한 이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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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했다는 기록이 내게는 매우 인상적.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동시에 목격하는 피조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초막 셋을 왜 짓겠다고 했는지 이해하려면 당시 유대 관습과 문화적 전통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혹시 초막절과 관련있는 것일까?
-모세가 구약 성경에서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드러낸 구절을 7절에서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용하심
신명기 18장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변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와 구세주로 믿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이루시는 십자가 사건 전까지,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비밀로 묶어 두심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제자들이 말하는 서기관의 예언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답변하신 이 말씀의 근거가 되는 성경말씀을 어디에 있을까?
-엘리야가 먼저 와야한다는 예언은 말라기 4장에 기록됨
말라기 4장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생활했다는 피상적 유사점과 더불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눈치보지 않고 전파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본질적 공통점이라 느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고난과 멸시를 당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이사야 53장에 기록됨
이사야 53장
1 우리가 전한(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2)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라기의 예언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으로 답하셨을까? 오래오래 곰곰히 생각해 볼 묵상 제목이라 느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말라기 관련 질문에 답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에 품고 서로 문의한 내용, 즉,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이사야의 예언으로 답하신 것이라 일단 느낌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이 바로 예언을 이룬 먼저 온 엘리야임을 확증해 주시는 기록
-서기관들은 그렇게 성경의 예언을 밝히 알고 있었음에도, 왜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 예수의 오심을 알리는 엘리야임을, 그리고 그런 세례 요한의 준비된 소리 다음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기준이 성경 말씀이 아니라 자기의 소견이자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과 영향력이었기 때문
-내 믿음과 삶 역시 말씀에만 기준 삼는 삶인가?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 쫓지 못하자 왜 서기관들이 제자들과 변론, 논쟁, 말싸움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능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알에 의지한다고까지 주장한 기록들이 복음서에 남아있기 때문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서기관들과 변론의 원인이 귀신을 내어 쫓지 못한 것임을 파악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 구절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귀신들린 자기 아들이 말 못한다고 여기는 아버지의 말.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귀신을 내어 쫓으실 때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라고 부르시는 것과 사뭇 다른 점. 평생을 귀신들린 아들을 치유하기 위해 애쓰고, 어릴 때부터 귀신이 아들을 해치는 것을 봐온 부모조차 실상 그 귀신의 정체를 몰랐다는 의미. 어쩌면 제자들이 이 귀신을 내어 쫓지 못한 이유 역시 부모의 말만 듣고 대처했기 때문은 아닐까?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막상 제자들과 논쟁한 서기관들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씀이 없으심. 다만, '믿음 없는 세대' 전체를 책망하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 없는 세대를 사랑하셨지만, 동시에 항상 참으시기도 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음. 그리고 이들과 영원히 함께 계실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셨음을 기록.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임을 예표로 보여주시는 것이라 느낌
-제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 서기관들과의 논쟁 원인이 된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예수 그리스도. 내게로 데려오라는 이 말씀이 마치 나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느껴짐. 나의 무능과 무지를 분명히 보시고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떠맡아 주시는 이 분이 바로 나의 주인이시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신다 느낌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 그렇기에 나를 참으시면서도 먼저 하신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고 나를 그의 앞으로 데려오라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는 확인할 수 있는 것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다른 귀신들처럼 이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되심을 외치지 않음. 왜냐하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이기 때문
-그렇기에 '예수를 보고' 그저 이 아들이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구르고 거품을 물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축사를 훼방
-이는 또한 아버지의 증언, 아들을 죽이려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는 말과 유사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믿음없는 세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고 계심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는 비단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 무례하게 말하는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님
-귀신은 아들을 죽이려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데, 그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버지의 무력감과 무지와 무능이 너무나 잘 드러나고 있는 장면
-나의 무지와 무능 때문에 생기는 무력감은 나의 힘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다는 진실 앞에 비로소 전지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아닐까? 어릴 때부터 아들에 대한 무력감을 절감하며 극심한 절망고 고통 속에서 학습된 무력감에 함몰된 아버지를 소리질러 내가 믿나이다 선포하도록 만드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 말씀도 마치 나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느껴짐
-전지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지금도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짐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이의 아버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귀신의 정체를 꿰뚫고 계심을 기록이 보여주고 있음. 무력감에 함몰된 무지하고 무능한 아버지는 아들이 말못하게 귀신들렸다 말했으나, 실상은 그 귀신이 말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귀신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축사 직전 부르시는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음
-어떻게 듣지 못하는 귀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었는가? 바다와 바람과 파도도 그의 말씀을 듣고 잔잔해 진 기록이 이미 나와있기에, 비록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듣지 않을 수 없음을 이 듣지 못하는 귀신이 확증하고 있음. 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하심을 드러내는 장면이라 느낌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신 또 다른 사례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어린 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단 손을 잡아 주시기만 하면, 대상이 살았건 죽었건 상관없이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삶을 얻는다는 진리를 두 기적이 보여준다 느낌
-사람들이 죽었다 말하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분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 아버지와의 개인적이고 은밀하면서도 고유한 대화
-듣지 못하는 귀신을 내쫓도록 말씀하신다는 것은 곧 전지전능하신 분의 섭리가 임한다는 것. '이런 종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는 이런 의미가 아닐까?
-'집'이란 어디를 의미하는 것일까?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깨닫지 못했기에 묻지도 못한 것일까? 왜 깨닫지 못했는데 묻지 않았을까?
-나는 늘 성경 말씀에 나 자신을 비추고 있나? 나는 항상 내 삶의 갈림길에서 성경 말씀과 성령님께 묻는 삶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세 번이나 듣는 제자들은 왜 결국 모두 도망갈 수 밖에 없었나? 분명히 미리 말씀하셨건만. 그리고 부활하실 것까지 말씀하셨는데, 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 마리아의 증언도 무시하고 갈릴리에서 보자시는 약속도 잊었을까?
-바로 앞서 마가복음 9장 12절 본문에서 서로 문의하고 마음에 품은 것들을 이사야의 예언으로 답해 주셨건만, 왜 제자들은 부활 사건의 예표와 그 의미, 그리고 부활의 본질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갈릴리 가운데, 즉, 자신의 고향 한 가운데를 지나시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시려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 방문에서 배척하던 사람들,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실까?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이 도대체 무슨 의미였기에 제자들 사이의 서열이 그토록 논쟁의 주제가 되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권력자가 되실거라는 자신들의 소견에 따른 헛된 논쟁. 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영접하는 방법이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고 극진히 대하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로써 세상에서 권력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 메시아, 그리스도의 역할과 궁극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심
-그리스도, 메시아는 결국 자신의 죽음과 그에 따른 부활로 끝까지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임을 재차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이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 살아 생전에는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임
-우상 공장인 내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코 앞에 놓고도 내 욕망과 욕정과 욕심과 욕구를 해소하는 우상을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겉모습만 씌워 만들어내고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만 같은 장면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복음의 목적은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있는 조직을 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하시고 복음의 취지와 목적,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복음 전파자의 공통체에 속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느낌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한 복음 공동체인 '우리'에 함께 하기 위한 조건은 그저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은 복음 전파의 절실함을 잘 보여주시는 것이라 느낌
-주의 이름으로 귀신쫓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이심을 믿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 중의 하나에게 따르는 것에 주저한다면,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해 주심.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비방할 자가 없다며 단호하게 규정해 주시기 때문
-내가 따라야할 분은 공동체의 누군가, 공동체의 사람들 중 내게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여실히 나타내시는 말씀이 아닐까?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매우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물 한 그릇의 선행도, 실족케 하는 것도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시고 감찰하시고 계시며, 그 보응은 반드시 항상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믿음의 공통체는 거기 속한 사람들 사이의 무작위 네트워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방사형, 일대일 구조가 본질임을 보여주시는 말씀. 나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이고 친밀하며 은밀한 일대일 관계를 기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계된 다른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나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로 연계되는 것이 바로 믿음의 공동체라 느껴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가 공동체에서 어떤 지위와 역할과 가치를 지니든지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그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하심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또는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어떤 사본에, 44절, 46절 양 절에, 48절과 같은 문구가 있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또는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어떤 사본에, 44절, 46절 양 절에, 48절과 같은 문구가 있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실족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영생에 혹은 생명에 들어가는 것의 반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중간은 없음. 이 진리의 이분법은 단 두 가지 가능성 뿐이기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지 논리적 오류인 이분법이 아니라는 진실을 잊지 말 것. 가능성이나 선택지가 두 가지 뿐이라고 해서 언제나 이분법의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성경의 내용을 비난하기 때문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임을 다시 한 번 극적으로 강조하시는 말씀. 사실 죄를 저지른 손과 발과 눈을 내 육신에서 제거한다 하더라도 죄악은 없어지지 않음. 죄악을 사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기 때문. 모세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의 원용처럼 보이는 이 표현을 쓰신 이유는 아직 율법에 메여 있는 유대인들, 그리고 제자들 때문 아닐까?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불과 소금의 피상적 유사성과 본질적 공통점은 과연 무엇인가? 이 비유의 비밀에 대해 더욱 깊이 묵상할 것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49절과 50절의 의미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2. 나도 모르게 기대고 있는 특별한 체험이나 신비로운 경험이 있나요? 무엇인지 적어보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기로 다짐해 봅시다.
없음
심정이 통하는 기도
주님, 신비한 경험보다 우리와 끝까지 함께해 주시는 예수님만 의지할 수 있는 견고한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함께 기도 - 서현소년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마음에 품고,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순종하는 소년부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 미련하고 아둔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감히 마가복음을 묵상하려 매일 버둥대고 있으니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루 종일 본문을 붙잡고 있어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마가복음을 통해 제게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받아 실천하고 실행하는 삶, 예배와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송과 감사가 삶의 최우선이며 유일한 삶의 목적이자 의미이자 이유임을 평생의 삶으로 확증하는 예배자가 될 수 있도록 제게 힘과 용기와 지혜와 기쁨과 사랑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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