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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나눔] [부스러기 은혜에도 만족할수 있다면] 설교를 듣고 많은 은혜와 감동이 있었습니다
글쓴이 김학균
날짜 2024-06-10
조회수 371

 

예수님의 발끝이 머무는 곳, 손결이 닿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 생각이 머무는 곳, 감정과 의지가 표출된 곳에는 늘 기적과 은혜가 넘치는 곳임을 성경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1주일 간 지난주 설교와 마태복음 15장을 반복해 듣고 읽으며 수로보니게 여인의 '실존적 겸손'에 대해 묵상하다가 호기심이 발동해 예수님의 "발길이 머무는 곳"을 (예루살렘 ==> 두로 ==> 갈릴리 호수가) 구글어스로 검색해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런 예수님을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차 주님을 사랑한다고 또 진심으로 리스펙 한다고 고백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 예루살렘 (바리새인/서기관 꾸짖으심)

그 때에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마15: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막7:1)

■ 두로/시돈 (수로보니게 여인 딸 고치심)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15:2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막7:31)

■ 갈릴리 호수근처 산 (병자들 고치심/칠병이어 )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마5:29)


마태와 마가는 각각 마태복음 15장과 마가복음 7장에서 3개의 동일한 장소에서 3개의 사건을 각자의 눈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2개의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Q1>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고 왜 뜬금없이 이방 땅 두로로 이동 하셨을까?

Q2> 각각의 장소 이동시 "거기서 떠나사" 또는 "거기서 나가사" 이런 문구가 나오는데 바로 떠나셨을까 아니면 좀 쉬시다 떠나셨을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을 꾸짖으신 후, 뜬금없이 두로로 이동 하셨는데 자그마치 거리가 북쪽으로 406km 떨어진 해안 도시입니다. (지금의 레바논, 과거에 페니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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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406km가 평지길이 아니라 구글 지도를 찾아보면, 갈릴리 호수 데가볼리 지역 사이에 북쪽으로 다멕섹에서 남쪽으로 약30km에 걸쳐 뻗어 있는 정상 2,814m 헐몬산 자락을 따라 최대 고도 1,560m 산길을 걸으셨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2000년전 아무 등산 장비 없이 해발 2.814m 산자락을 따라 406km를 걸어서 두로까지 왜 가셨을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분명히 고향이 갈릴리와 가까운 나사렛 지방 출신인 예수님은 406km가 어떤 길인지 알고 계셨고, 갈릴리 어부 출신 제자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도 분명히 이 406km가 어떤 길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두로로 가자"라고 했을때 제자들이 어떤 반응 이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말이 406km이지 24시간 내내 걸어도 꼬박 3일 하고 22시간이 (94시간) 걸리는데, 구글 지형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갈릴리 호수와 데가볼리 지역 사이에 (갈릴리 호수 오른편)는 2,814m 헬몬산이 북쪽으로는 다멕섹 갈림길 에서 남쪽 사해바다 바로 위쪽까지 약 30km 이상 북에서 남으로 산맥 형태로 뻗어있어 예루살렘 ~ 두로까지 산길을 가려면, 최고 고도 1,523m 최저 고도 해저 379m 고도차를 거치는데 [※ 이스라엘은 갈릴리 호수 오른편으로 북에서 남으로 뻗어 위치한 헬몬산 중심으로 13시 ~7시 방향, 북동 ~ 서남으로 기울어진 지형이라 물길이 북동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다보니 갈릴리 호수 서쪽편 위쪽 두로에서 남쪽 예루살렘으로 오는 비교적 평평한 길은 지형상 구릉과 물길이 많아 도보가 불가능 합니다 ※ ] 사해바다 북쪽에서 700~800m고지 깜짝 봉우리를 2개 넘고 서서히 고도를 높혀가며 다멕섹 지역 갈림길 까지 최고 고도 1,563m까지 올라 갔다가 다멕섹 갈림길 삼거리 지점에서 두로로 향하는 좌편부터는 지형이 급하강 하는 정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산악지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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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산악 동호회에서 백두대간과(남.북진) 8정맥을 (4번째 정맥길 중단)을 오룩스 맵과 등고선을 그려가며 산을 탔던 준 산악인이지만, 기후 변화가 심한 1,000m 고지 이상 산에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곤 하는데, 2000년전 406km 장거리 산행을 아무 장비 없이 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 했을까? 성경을 읽으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루 12시간씩 4일 만에 간다고 해도 시간당 8.5km를 가야하는데 1,000m 이상 고지 산에서는 시속 3.5km 이상만 가도 거의 전문가 수준입니다.  평지라도 시간당 8.5km면 10분 당 1.4km를 12시간 동안 꾸준히 가야하는데 왠만한 철인 3종 경기 체력 보유자가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런닝머신 뛸 때 시속 8.5km/h 속도로 12시간을 뛰는 느낌) 그 당시 지도도 나침판도 통신기기도 등산 장비도 없을 터인데, 이런 것을 고려해도 하루에 12시간씩 4일을 갔기에는 무리한 상상이고, 꼬박 밤낮 24시간을 4일간 가면 하루에 101km를 가게 되는데 시간당 4.2km 속도로 24시간을 완급 조절해서 진행 한다면 (한라산과 비슷한 지형 이라면) 그건 가능한 수준이지만 J3와 같은 거의 산악인 수준급으로 가야합니다. (J3는 100km 이상을 무박으로 하루만 돌파하는 전문 산악인 동호회)

하루에 101km를 24시간에 갈쳐 시간당 4.2km를 완급조절 하며 4일 동안 (무박, 쪽잠, 휴식, 식사 포함) 산행하신 것이 당시 여건을 고려하면 가장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인 방법인데 어째거나 산을 경험해 본 준산악인의 관점에서는 육체의 체력적 한계와 자신의 정신력에 도전해야 할 만큼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2000년 전에 4일간(94시간) 무박으로 시간당 4.2km 속도로 700~1,500m 고지의 지맥 산길을 간다는게,기온 급강, 지형의 고저 차이, 체력 안배, 산 짐승, 식량, 등산장비 (랜턴, 물)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결코 쉬운건 아니지만 지금 산행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무모한 짓이고 목숨을 건 행위라는걸 정맥길 산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100% 공감할 것입니다.

이를 모를리 없는 갈릴리 출신 예수님은 이 어려운 길을 왜 굳이, 사서 고생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위협이 있는데 왜 꼭 두로로 가셔야만 했을까????

이점이 정말 궁금했는데 담임 목사님 설교 말씀 중,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을 꾸짖고 그 장면을 본 제자들에게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답을 유도함으로써 실존적 겸손을 바리새인들을 타산지석 삼아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성경을 읽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말씀에 정말 깊은 울림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감동적인 사실은, 예수님은 목숨을 아끼시지 않으면서까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서 406km가 어떤 길인지 아셨는데도, 한 영혼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열정의 마음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까지 "일부러" 헐몬산 2.813m 산맥길 산자락 따라 406km를 꼬박 94시간 동안 걸어 두로 지방까지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주시려고 찾아 주셨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예수님이 어둠속에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을 사는 잃어버린 내영혼을 만나 찿아 주셨고, 그런 목자의 마음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줄 아셨는데도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기꺼이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ㅠ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해 단번에406km 험한 산길을 걸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존경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10:14~15)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10)

만약에 예수님이 어떤 목사님에게, 죽어가는 성도가 있고 그 목사님을 만나 안수기도를 받으면 반드시 살수 있어 그 목사님에게 성도를 찾아 가라고 하는데 대신 조건이 모든 등산 장비 갖추고 백두대간길 남한 지역 총 650km중 406km를 4일 동안 무박으로 걸어 가라고 예수님이 명령 한다면, 어떤 목사님이 선뜻 그 말에 순종하여 가실수 있을까요? 과연 선뜻 순종하실 분이 있으실까요??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긍휼의 마음과 그 영혼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시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과 열정이 그 험난한 406km 고생길을 뻔히 아시면서도, 94시간 동안 걷게 하시고 의도적으로 수로보니게 여인을 찾고 만나 주신거라 생각할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  아무리 실존적 겸손의 가르침이 중요하다지만.....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의 마음으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아들을 잃고 소망이 끊긴 나인성 과부를 찾으셔고 또 대인 기피증에 걸려 사람들을 피해 땡볓이 내려 쪼는 한 낮에만 물을 길으러 우물가를 찾았던 사마리아 여인도 의도적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눅7:11)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4:3~4)

이렇게 갈급한 한 영혼 찾아 고난을 감수하고 목숨까지도 버리는 선한 목자의 마음을 알게되니 내가 받은 구원은 세상의 어떤 보배보다 귀하다는 생각에, 이제는 선한 목자의 마음을 생각하며 다시는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선한 목자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는 삶을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ㅜㅜ

이런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의 마음은 늘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안스러워 하시고, 위로하시고 ....  사흘 밤낮으로 헐몬산 산자락을 따라 두로에서 다시 갈릴리 호수 근처 산까지 예수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들었던 많은 무리들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예수님 하시는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이게 내 목자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마15:32)

".. 불쌍히 여기노라..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정작 예수님 본인은 육신이 피곤하고 번아웃 되고도 남을 만큼 체력우 소진과 육체의 한계가 왔는데도, 본인은 챙기지도 않고 오직 예수님의 마음은 육체적으로 병들고 아프고 배고픈 양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을 위해 따로 도시락이라도 준비 하셨을까요?  ㅠㅠ

마태복음 15장 예수님의 이동경로 2번째 두로에서 3번째 갈릴리 호수 서편까지는 344km로 3일 8시간(80시간) 거리로 똑같이 헐몬산 산맥과 지맥 능선을 따라 역으로 시간당 4.3km/로 가야하는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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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일하고 8시간이 마태복음 15:32의 "...이미 사흘이매..." 와 일치되는 시간입니다. 다시얘기하면, 2번째 경로 두로에서 귀신들린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시고 "곧바로" 갈릴리 호수 서편까지 꼬박 3일에 (80시간) 걸쳐 갈릴리 호수로 왔고 "두로에서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 갈릴리 호숫가까지 따라 온 무리 중에서 병자들을 고치신 후 (병고침 받으로 3일 밤낮을 두로에서 예수님을 따라왔다는 그 것만으로 믿음이 증명됩니다) 두로에서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호수로 와서 있는 3일 동안 먹을것이 없었다고 영문 성경에는 그 의미가 더 명확히 기록되 있습니다.

그 얘기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두로까지 94시간 동안 406km를 걸으셨고 거기서 바로 나오셨는지 일정 기간 휴식 시간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또 다시 80시간에 걸쳐 갈릴리 호수까지 344km를 걸어 오셨기에, 7일간 총750km를 헐몬산 산자락을 오가셨고 그 중 3일은 굶으셨고 마지막 7일째 갈릴리 호수가에서 두로에서 따라온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그들이 기진맥진 해서 집에 가는 도중 쓰러질까바 도저히 보낼 수 없어 그 긍휼의 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정작 본인은 7일간 산길을 걸으며 기진 맥진한 상태여서도 똑 같이 3일을 굶주린 병자와 무리들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시는 목자되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ㅠㅠ

두로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의 치유함 기적을 보고 많은 이방인들이 메시아 예수님을 믿고 왔던 방향으로 헐몬산 산자락 344km를 따라 3일 내내 걷고 갈릴리 호수에 도착하여 건너편 산에 올라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십니다.  이 병든자들에는 다리 저는 사람도 있었고 병고침을 받기 위해 밤낮 3일 동안 344km를 걸어 두로에서 갈릴리 호수까지 왔고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온 무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 " ...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이 말씀이 얼마나 내 마음을 울먹이게 했는지 모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406km와 344km 헐몬산 자락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두로까지 두로에서 갈릴리 호수까지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어 유대 온 땅과 사마리아 땅끝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하시려고 부단히 애쓰시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끔찍히 아끼시고 사랑하신 예수님... 나의 참 목자되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ㅠㅠ

주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주님의 나를 향한 그 진실한 목자의 마음 알았으니 이제 다시는 죄 짓지 않고 말씀 따라 순종하며 주님 마음 위로 해드리며 살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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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 예수님이 수백 키로를 걸어 두로까지 가신 이유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아수르에 멸망 (BC722)
바벨론 왕국 (BC605 ~ BC539)
남 유다 바벨론에 멸망 (BC 586)
페르시아 (BC 539 ~ BC331)
그리스 (BC 331 ~ BC 168)
로마 (BC168 ~ AD 1453)
서로마 AD476/ 동로마 (AD1453) 멸망

통일 이스라엘 왕국 다윗(BC1010 ~BC970 )/ 솔로몬(BC970 ~BC930) 시기에 두로와 이스라엘은 우호적인 관계였고 두로의 히람왕은 많은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위해 많은 자재를 공급했다고 하며 통일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리되는 시점에 두로 왕 엣바알은 자신의 딸 이세벨을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정락결혼을 시켜, 두로의 우상들을 가져온 이세벨에 의해 북이스라엘 전역에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퍼지게 되고 이 시점에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전투 대결이 갈멜산에서 펼쳐졌습니다

여러 선지자들이 두로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를 선포했는데 요엘과 아모스는 두로가 계약을 파기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판 일로 심판 메시지를 선포했고 (욜3:6 - 두로는 BC585년에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위 당하고 공격 당했으나 실패 하였고, 254년 후 BC 331년에 헬라 청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 당하는 예언의 성취가 성경에 나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도 두로의 부와 교만으로 인해 심판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에스겔은 에스겔서 28장 2절에서 두로왕의 교만함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이르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한때 다윗/솔로몬때 무역 교역국으로써 두로와 통일 이스라엘 두 나라 사이가 우호적이었으나 나라가 분열된 후 3번에 걸쳐 북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은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고 교만한 두로왕은 유다와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 (알렉산더 대왕 BC331~ BC168) 에게 노예로 팔아 넘비고 많은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교만한 두로의 멸망을 예언하였고 난공불락의 두로는 BC331년에 헬라 왕 알렉산더에게 멸망 당하고 헬라시대의 전성기가 옵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공교롭게도 두로에 사는 헬라인 출신이며 예수님은 공생애 기준 약 350년 전 헬라(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던 유대인의 후손으로 상황이 역전 되어서 "두로에서" 헬라인과 유대인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고 예수님에게는 유대인의 수치스러움을 떠올리게 하는 두로에서 그것도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인 이방인 출신 헬라인 수보로니게 여인을 만나주고 계시고 역사적인 수치도 잊으시고 예수님 본인이 메시아이고 생명의 주 되심을 선포하고 있는 장면을 따르는 무리와 12제자들과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고소할 증거를 찾아 혹시라도 따라왔을 바리새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수백 키로를 걸어 수로보니게 여인을 찾아 두로까지 오신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시실 이방인 구원을 위해 쓰임 받은 바울이 다멕섹 가는 도중 주님을 만나 삶이 변화 되었지만, 이방인 구원과 이방인 복음 전파의 원조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 주셨던 예수님 입니다.

https://youtu.be/hHZ6Rue1rsI?si=SRdBj8Fr1WjB5uef
(두로에 대한 이야기)
(2024-06-12 1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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