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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한구절은혜나눔] 260505 창세기 38장 -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
|---|---|
| 글쓴이 | 송현석 |
| 날짜 | 2026-05-05 |
| 조회수 | 587 |
본문 개요
유다는 다말이 가져온 증표를 보고, 자신이 다말에게 아들 셀라를 주지 않은 잘못을 인정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개역개정]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새번역]
26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한 구절 묵상
유다는 다말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이 무너졌음을 인정합니다. 이 고백은 변명 없는 인정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흠 없는 선택보다 진실한 인정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봅니다. 우리는 실패를 감추려 하지만, 하나님은 진실된 고백을 통해 계보를 이어 가십니다. 회개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묵상질문
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교훈 또는 감동은 무엇인가요?
제 38 장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유다가 아내의 이름을 성경을 기록하지 않고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라고만 기록. 이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마땅치 않아했던 아브라함,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 이미 기록하고 있기 때문. 그리고 이런 전통과 교육이 이미 야곱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유다가 과연 이런 결혼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됨. 이 부분이 성경에서 불확실 하기에 왜 유다가 가나안 여인과 결혼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음. 다만, 야곱이 이 결혼을 부추기지는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았음을 추정할 순 있음. 그렇기에 야곱의 자식 교육은 라헬의 아들 요셉 이외에는 무관심으로 일축되지 않았나 추정하게 됨. 편향된 사랑, 어긋난 사랑이 끝까지 악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죄성이 본성인 인간의 사랑이란 결국 이런 것일 뿐이란 말인가?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한 것임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음. 내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 될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과 결혼하게 될 지는 내가 지금 누구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결정한다는 진실을 성경이 내게 알리고 있음. 나는 지금 예배와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양과 감사를 게을리 하고 멀리 하고 있지는 않나?
-유다가 큰 아들은 깨우다는 의미의 동사에서 유래된 이름인 엘로 지은 것이 내게는 마음에 걸림. 과연 유다가 의미한 아들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소원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면 이루어 주는 이방 신을 일깨우는 것이었을까? 결국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죽게 되나, 그 구체적인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음. 기록할 이유와 가치가 없었기 때문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다말은 야곱 족속이나 히브리 족속이 아닐 가능성이 높음. 아마도 가나안 여인이라 추정가능하지 않을까?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오늘 창세기 38장 모든 사달은 바로 엘과 오난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하므로 시작되었음. 내게 가장 핵심적으로 다가오는 메세지는, 바로 그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것들조차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편입시켜 구원의 섭리의 일부로 바꾸셨다는 사실. 이는 마치 내가 악독하고 더럽고 미련하고 음란한 죄인임에도 결국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와 물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예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삶을 채울 수 있는 기회는 주신 것과 동일하다고 느낌
-특히, 오늘 창세기 38장의 기록들은 모두 성적인 측면에서 여호와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위들이었음이 내게는 마음 깊이 다가옴. 이는 이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를 성전으로 삼아주셨다는 구원의 진리와 맞닿아있다 느껴지기 때문
고린도전서 3장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또는 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두 번이나 연달아 요호와가 보시기에 악한 일이 한 가정 내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왜 유다는 정신차려 근신하여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는 관습과 습관의 갑옷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악한 상상력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나?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유다는 왜 엘과 오난의 죽음의 원인을 셀라에게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해소하지 않았을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기만 하면 다시는 죽지 않을 것 아닌가? 어쩌면 유다에게는 이 해결책이 불가능했기에 못했거나 안했을 수 있다 묵상. 여호와를 모르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 결과이자 스스로도 평소에 삶 속에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 추정 가능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아 아들이 둘이나 죽었지만 유다는 이를 삶으로 인정하고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었음. 그렇기에, 다말에게 그런 위선적 태도를 서슴지 않고 취할 수 있었던 것
-유다는 또한 자기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고 있음. 엘과 오난의 죽음이 다말의 탓인가? 그럼에소 셀라도 그의 형들 같이 죽을까 걱정했다는 기록은 두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 전혀 아니라고 여겼다는 의미로 내게는 다가옴. 애꿓은 다말만 청상과부로 늙어 죽게 만드는 유다의 또 다른 죄악이 발생하는 순간. 그리고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선 이렇게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일에 섭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됨. 왜냐하면 다말의 결행을 당시 관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아닐까 느껴지기 때문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다말은 분명히 유다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고 있었음. 아내의 여의고 곧바로 창녀를 찾을 깜냥임을 간파했기에 에나임 문에 앉아 창녀의 복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음. 유다가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과 욕구를 참지 못하는 위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셀라에게 아내로 자신을 주라고 말해도 듣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음
-그렇기에 유다의 거짓과 회피를 두고 자신의 목숨을 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 묵상. 다말은 왜 목숨을 걸 수 밖에 없었을까? 기록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메세지는 내게 다다랐음. 어떤 언약이든 모든 약속은 목숨같은 값어치가 있는 것이니 반드시 지키라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통한 지령이라 묵상. 그러므로 언약과 약속은 또한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님을 같이 말씀하신다 느낌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히, 크데샤, 가나안 이방 성소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히, 크데샤, 가나안 이방 성소의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유다의 또 다른 죄악. 자신의 들끓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가나안 이방 신을 섬기며 모든 남자들과 관계 맺는 여인과 동침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음. 과연 유다에게 구별되고 구분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각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겠나? 그러면서도 며느리 다말의 임신 소식에는 짐짓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엄격한 계명을 따르는 자같은 위선을 부리고 있음을 바로 다음 절에서 확인할 수 있음
-유다의 이런 끔찍한 위선은 바로 내 삶의 모습이기에 오늘 말씀이 내게 보이신 것이라 묵상. 그리고 이런 끔찍한 위선은 곧 내 안에 들끓는 교만과 자랑과 자기 의, 나는 옳으며 구별되었다는 바리새인같은 비뚤어진 외식에 기반하고 있음을 유다의 이중적 행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음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같은 겉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유다에게 위선을 폭로하는 다말. 결국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언약과 계명을 주신 이유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신실하지 않으신 분이 아니라, 바로 나의 본성인 죄성 때문임을 유다를 통해 확증하시는 것이라 묵상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계명이 아니었다면, 다말을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 마치 내가 나의 죄악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다말의 행동은 원인이 분명히 있었으며, 그것이 유다가 언약과 약속을 어긴 것이 었기에 다말의 행동과 그 결과를 받아들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생육하고 번성하고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라시는 명령과 언약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배경이 되는 것. 죽을 수 밖에 없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 새 생명을 얻어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의 일부가 된 것과 같다고 느끼는 본문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왜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나? 시도때도 없이 변하며 거짓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나는 나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 기준없이 정의를 왜곡하고 불의를 행할 수 밖에 없는 죄성이 본성인 자이기 때문
-유다가 나보다 옳도다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들 셀라에게 주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어겼다는 진실이 자신의 앞에 부인할 수 없이 드러났기 떄문아닌가? 다말에게 담보로 맡은 유다의 도장과 지팡이가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과연 유다가 다말이 밴 아이들의 아버지임을 인정했을까? 전지전능하지 못한 무지하고 무능한 피조물이 그 본성으로 죄성까지 품고 있을 때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고 악독하며 더러운 죄악들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겠나? 그러나 언약과 그 언약을 증거하는 담보와 확증은 나의 죄악을 저지라는 최후의 마지노 선임을 보여주시는 것이라 묵상. 유다의 옳도다라는 고백은 담보물이 없었다면 결코 뱉지 않았을 말이기 때문
-그리고 언약의 확증에 대한 폭로는 다시는 같은 죄악을 저지를 생각조차 지닐 수 없도록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음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터뜨림)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가나안 여인 수아의 딸, 성경이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은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 엘. 그 엘이 여호아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죽고 난 후 과부로 남은 다말을 통해 유다의 계보를 이으신 섭리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렇게 유다가 다말에게서 낳았다 분명히 기록한 베레스의 후손 보아스가 모압 여인 룻을 아내로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루는 섭리는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왜 성경은 유다와 살몬과 보아스의 경우에만 자손들의 이방인 생모 이름을 콕 짚어 기록하고 있나? 이를 통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일까?
마태복음 1장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그렇게 보아스에게서 오벳을 낳은 룻에게 다말에게와 같은 축복을 노래하는 성경 기록은 또 나아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
룻기 4장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다말과 베레스의 집과 같은 축복을 받은 룻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서 아들 오벳을 통해 다윗까지의 계보를 단순에 이루시는 섭리는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2. 우리를 다시 시작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감추지 않고 정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내 안에 아직도 들끓는 교만과 자랑과 자기 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예배와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양과 감사가 아니면, 도저히 여기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라는 진실
심정이 통하는 기도
의로우신 주님, 변명보다 정직을 선택하는 제가 되게 하시고, 회개의 자리에서 회복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 - 분당우리지부
모든 기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셔서 주신 은사들이 조화롭고 풍성하게 사용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제 삶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인생이 아닌지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하루 하루를 살아내기 간절히 원합니다. 아버지, 제 자신을 속이지 않고 똑바로 직면할 수 있도록 제게 말씀과 성령이 항상 임재하게 하시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오직 말씀을 기준으로만 구별하고 구분할 수 있도록 경건하고 거룩한 삶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와 기쁨과 사랑 주시기만을 간구합니다. 아버지, 저의 모든 악독함과 미련함과 음란함과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피와 물로 저를 구원하셨으니, 이 은혜의 기쁨을 항상 마음에 품고 한 순간 한 순간 살아내어 아버지께 영광만 돌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더 이상 세상과 사람들의 눈치과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교만과 자랑과 자기 의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아버지 하나님과의 서사가 단단히 맺힌 돌멩이 다섯 개를 마음에 새기고 아버지께서 제게 직접 말씀을 통해 주시는 아름답고 거룩한 영적 상상력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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