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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한구절은혜나눔] 260902 마가복음 2장 - 속, 중심, 심령, 마음, 아시고 |
|---|---|
| 글쓴이 | 송현석 |
| 날짜 | 2026-09-02 |
| 조회수 | 610 |
본문 개요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자신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음을 선언하십니다.
오늘의 한 구절
[개역개정]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새번역]
17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한 구절 묵상
바리새인들은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섬기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진지함이 문제였습니다. 선을 지키려는 열심이 어느 순간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선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지키는 자. 저 사람은 더러운 자. 그 순간 종교는 은혜의 통로가 아닌 배제의 도구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선을 넘어 죄인의 식탁에 앉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경계를 넘으셨기에 죄인들에게는 은혜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사실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의 자리에 있던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묵상질문
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교훈 또는 감동은 무엇인가요?
제 2 장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끌리지 않고 소문에 끌리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
-소문에 끌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집까지 쳐들어 옴. 소원과 욕망과 욕심과 욕구와 욕정을 이루고자 하는 열심이 누군가의 프라이버시를 서슴없이 침해하도록 하는 모습처럼 내게는 보였음
-아무런 소명과 목적 의식이 없는 군중들을 이끄는 유일한 것이 바로 소문. 그리고 그 소문을 듣고 충동질하는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의 욕심과 욕망과 욕정과 욕구에만 이끌려 움직이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 내 모습이라는 진리를 마가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소문에 끌려 온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 도, 길을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
-왜 이들은 문 앞까지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게 모였을까? 바로 소문을 확인하기 위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듯. 그리고 소문에 병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중풍병자를 고치신다는 말씀을 들은 병자들도 있을 듯. 그렇다면 복음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까? 없었기에 여기 기록하지 않았을 듯. 거기 더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기적을 경계하고 비난하려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 섞여 있었음
-이렇게 복음 전파의 자리에는 복음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없었음. 그저 소문을 듣고 자신의 목적만을 이루려 모였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욕심과 욕망과 욕정과 욕구를 채우고 해소할 도구로 여기는 사람들만 득시글한 장면을 마가가 유독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 있는 나의 적나라한 모습과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비추어 주는 것이라 느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주시고 십자가로 구원하실 때 실은 내가 그런 엄청난 사람과 은혜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다는 진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라 내게 느껴짐
-이 구절은 그러므로 내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 즉, 나를 태초부터 먼저 사랑하신 분의 사랑이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느낌
로마서 5장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받을 자격 없는 내게 성경 말씀을 통해 그의 도를 친히 말씀해 주시고 계심. 그렇기에 이 말씀 묵상으로 나를 이끄심은 곧 나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의 확증이라 느낌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 광경을 보시고'라 기록하지 않고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복음서는 이 중풍병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작은 자야'라고 부르셨던 것을 굳이 기록해 놓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작은 자라는 명칭은 어떤 관계인가? 큰 자는 죄사함을 받지 못할 것인가?
-나는 스스로를 큰 자라 여기는가, 바울 사도처럼 작은 자라 여기는가? *바울은 라틴어로 작다는 의미
-나는 무리들이 앞을 가로막으면, 군중들의 의견과 성난 분노가 나를 가로막으면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포기하는 인생은 아닌가? 내게 중요한 것은 무리와 군중들의 의견과 결정인가, 아니면 구원을 향한 갈망을 주신 성령님께서 주신 마음인가?
-나는 지붕을 뜯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계신 곳을 떠나지 않는 굳은 믿음과 마음을 과연 지녔는가? 지붕을 뜯어 낼 친구와 공동체 동료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과 구원에 대한 갈망이 과연 내 속, 중심, 심령, 마음에 있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무엇이라 불러 주시길 원하는가? 작은 자? 큰 자? 세상에서 성공한자? 실패자?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예배자라 불러 주시길,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라 불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고 바랄 뿐
요한복음 4장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무엇이라 말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나? 네 소원이 이루어졌다? 네 문제가 해결되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가장 바라시는 것이 내게 이루어졌다 말씀해 주시길 바라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느낌.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내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해 주시기를 무엇보다 바라고 있음. 비록 내가 아직 애통하고 비참한 마음으로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격 없는 내게 용서와 사랑과 죄사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윗과 같은 회개를 이루어내기를, 그리고 그 회개는 나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먼저 용서하시고 먼저 죄사함을 주신 다음에 일어나는 섭리임을 깨닫게 하시고 이를 위해 간구하게 하셨다 느낌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어떤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판단했음. 그러나 이는 분명한 논리적이고 합리적 오류. 당대 최고의 지식인층이던 이들은 치밀한 논리와 합리의 정점인 율법을 보존하고 기록하고 가르치는 자들이었음에도 왜 이런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나?
-이들이 범한 오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신 말씀이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판단했음에도,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부분. 즉, 신성모독이란 신성이 나타났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신성인지 아닌지 판단할 자격이 인간에게는 없으며, 서기관들은 이 신성을 모독하는 것만을 죄악으로 삼을 수 있음. 그러나 이들은 어찌된 일인지 무엇이 신성인지 아닌지까지 판단하는 자리까지 스스로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짜 신성을 가지셨을 진리를 자신들이 깨닫지 못한다는 합리적 의심의 자리를 가차없이 버리고 그들 판단 고려 요소에서 제거해 버린 것. 이 합리적 의심을 저버린 것이 바로 어떤 서기관들의 오류. 그렇기에 진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라면 내 마음을 모두 들여다 보실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까지 내버린 것. 그렇기에 신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고 그가 모르실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
-결국 신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어떤 서기관들의 교만과 자랑과 자기 의는 예수 그리스도을 눈 앞에 두고 '거기 앉아서'조차도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
-교만의 본질은 거짓과 게으름. 이들의 오류는 이 둘은 모두 분명히 품고 있었음. 그들은 지적이고 영적인 게으름을 한껏 피웠고, 그 원인은 곧 자신들이 신성을 알고 판단할 수 있다는 스스로 속이고 착각하는 마음이었음
-어떻게 어떤 서기관들은 하나님 한 분만이 죄사할 능력이 있다는 진리를 모세오경을 통해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사할 능력이 있으심을 중풍병자 사건을 통해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는데도 이를 알아차릴 수 없었는가?
-어떤 서기관들의 모습이 결국 지금 여기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의 내 모습은 아닌가? 이 표현이 복수의 명사라는 사실이 내 삶의 여러 측면에서 이런 모습이라는 진리를 드러내는 것만 같다 느낌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또는 심령으로)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중시하시는 한 가지 기준이 이 한 구절에만 세 번 반복되고 있으며, 주석까지 네 번 반복되고 있음
-속, 중심, 심령, 마음
-나에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이 이 한 구절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보임. 속, 중심, 심령, 마음, '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내 속, 중심, 심령, 마음을 감찰하시는 전지전능한 분이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는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라는 확증이기도 한 것
-이런 놀라운 기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속, 중심, 심령, 마음을 아시는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으나 이 서기관들이 놀랐다는 기록은 없음. 무엇이 이들의 눈과 귀를 메시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보고 듣지 못하도록 가리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은혜는 그의 심령과 나의 심령이 만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진리. 나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심령에 공감할 수 있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놓으셨다는 진리가 이 구절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크나큰 은혜로 다가옴. 말도 할 수 없는, 부모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모든 비밀들과 고통들과 아픔들은 굳에 내가 말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심령을 나의 마음에 맞대어 이미 알고 계신다는 이 진리는 내게 세상과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 주고 있음
-또한 이 구절은 내 생각이 곧 기도가 되는 길을 열어 놓고 있음. 언제나 나의 생각이 정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만 있다면, 나의 모든 생각과 마음과 말이 곧 기도가 될 수 있다 느낌. 반대로 말하면, 내가 어떤 생가과 말로 기도한다 우기더라도, 스스로 속이더라고, 착각하더라도, 그 어떤 것도 기도가 될 수 없는 상황도 존재한다는 엄연한 진리를 내게 같이 보여주고 있음. 어떤 서기관들의 사례가 바로 그 뼈아픈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알다', '야다'는 오직 속, 중심, 심령, 마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진리를 마가복음은 내게 가르치고 있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곧 내게 온전히 완전히 열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내가 다가가고 들어가 거기 머무는 것이며, 나의 마음을 온전히 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머무시도록 내 생명과 삶을 내어드린다는 의미
요한복음 6장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한복음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 즉, 말씀이시라 요한복음이 제시한 진리를 믿고 그 말씀을 내 생명을 다하여 내 삶의 모든 순간에 되뇌이고 읊조리고 묵상하여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내 속과 중심과 심령과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묵상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왜 서기관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면서도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직접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죄사할 능력이 없다는 진리를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나? 바로 이 사실이 마가복음 1장에서 서기관들의 교훈에 권위가 없다는 기록의 원인이 아닐까?
마가복음 1장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이들의 가르침에 권위가 없었다는 것을 뭇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음. 단, 서기관들 자신만 모르고 있었음.오늘의 기록 역시 모든 사람이 다 놀라는 상황에서 서기관들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과 동일하다 느끼게 됨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가복음 2장에서만 스스로 죄사할 권세가 내게 있다 세 번이나 5절, 9절, 10절에 걸쳐 말씀하신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 구세주라는 진리를 오해의 여지 없이 분명히 말씀하신 것
-세 번이나 말했음에도 현장의 어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도무지 알아 듣지 못하고 진리를 거부하고 있는 장면을 마가는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음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내가 집으로 가는 것. 그것도 세상과 사람들의 집이 아니라 나의 본향, 아버지 하나님의 집으로 가시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이 구절에 담겨 있다 느낌. 그리고 그 집은 내가 오랫동안 누워있던 바로 그 자리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곳. 내 무거운 짐을 모두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짐되어 누워 있던 그 상을 아버지 앞에 가지고 가서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과 은혜의 증거로 내놓는 집이 진짜 나의 집이라 느껴지는 구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며, 이 연유가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과 의도에 맞는 것이었을까?
-모든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이유는 도무지 보지 못한 이런 일을 목격했기 때문이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복음의 시작이신 그가 전하신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가는 전하고 있는 것
-나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나? 내가 누워 있던 상을 들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누구신지 분명히 깨닫고 알고 그를 더욱 알기를 갈망하고 있나? 그리고 동시에 복음이 시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과연 내 마음 속에 한 조각이라도 품고 심장에 새기고 돌아가고 있나?
-중풍을 치유받은 그는 과연 구원함도 얻어 가도 있는가?
-군중들이 말하는 '이런 일'이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 섭리를 칭하는 것인가?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큰 무리를 보시면 가르치시는 예수 그리스도. 병 고침이나 귀신 쫓음이나 중풍병자를 일으키시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가르치시는 것이 최우선이셨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라 느낌
-구원은 오직 복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이라 느낌
-마태복음에는 이 큰 무리를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음
마태복음 9장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헬, 그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보여주신 것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헬, 기대어 누워, 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헬, 기대어 누웠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그러한 사람들'에 나도 포함되어 있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라 기록한 것에 과거사는 없음. 모두 현재 시제. 즉, 모두 현행범들. 그렇기에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책망하는 것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이들이 현행범이라는 사실이 바리새인의 서기관들과는 다른 의미로 보이시는 것. 즉, 이들이 현행범이라는 사실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에게처럼 책망과 기소와 혐오의 증거가 아니라, 바로 구원의 대상, 지극히 긍휼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할 대상이라는 확증인 것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 속에 함께 하셔서 사랑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인 곁에 있어주기를 실행하셨고, 거기에 더해 함께 식사하시며 그들과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까지 세우시는 것
-나는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 영향력있고 유명한 사람들과 식사하고 친해지기는 원하는 속물임.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상인이라면 혐오하고 피하고 책망하는 사람들 편에 서셔서 그들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음. 나는 과연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 중 하나를 영원히 기록에 남을 자신의 제자로 삼으시고 그는 신약성경 첫 책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는 것. 사랑과 긍휼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었을 것
-나는 과연 그가 죄성과 죄악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따를 수 있도록 나의 모든 것을 버리는 본을 보일 수 있겠나?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의 '어찌하여'에 일언반구 대꾸하지 않으시고 오직 복음만을 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진리가 아닌 것에 진리로 대꾸할 필요는 없음. 다만 진리를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전파하기만 하면 될 뿐인 것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내게는 또 다른 복음의 본질이자 사랑의 본질이라 느껴지고 있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죄인에게만 집중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내게도 말씀에만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느껴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금식을 해야할 때와 하지 말아야할 때를 정하시는 분을 앞에 두고 모세의 율법을 들이대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
-특히 요한의 제자들이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함께 말과 행동을 일치시켰다는 부분이 놀라운 구절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의 복음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면, 설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와 구세주로 내 앞에 있어도 나는 율법을 운운하며 미련하고 악독하고 음란하고 더러운 짓을 하고도 남을 존재라는 진리를 이 사건이 내게 알려 주고 있다 느낌
-금식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금식을 위해 사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금식이 있는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가 모세의 율법의 근간이라는 또 다른 진리를 깨닫는 것이라 내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짐
-이사야의 예언이 이미 금식의 의미를 말한 바, 이들은 이 진리를 같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 분명히 죄악과 고난과 고통에 처한 사람을 위한 것이 금식임에도 이들을 이 진리를 백안시 하고 있음
이사야 58장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따르면, 금식은 하지 말아야할 행동과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행동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음
-그러나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이 모두를 쏙 빼고 오직 금식만을 논쟁거리로 삼는 것. 이런 작당이 바로 율법을 자신의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쓰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의 논쟁에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논쟁하고 다투지 않으시고 악한 주먹으로 치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에게 관계의 본질을 밝히시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에 대한 본질을 드러내시는 것
-고통과 슬픔에 대한 온전한 반응이 금식이며, 금식을 불러 일으킬만한 고통은 바로 가장 친밀하고 개인적이며 은밀한 관계가 허물어 졌을 때 일어나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 부부관계의 허물어짐 정도의 고통을 수반하는 사건이 곧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임을 암시하시며,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확실하게 명시하는 것이라 느낌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비틀어 변형시킨 율법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담을 수 없는 부패하고 낡은 것임을 선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5장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새 포도주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섭리를, 새 부대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심을 보여주시는 구절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또는 가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금식에 관한 율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막을 수 없어 자신들의 기득권이 허물어지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 바리새인들이 서기관 이외의 사람들까지 모두 나서 제기한 것은, 모세의 율법에 어기면 반드시 죽이라 명령한 안식일 율법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는 것이 고의인지 목적이 있는 것인지 우연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먹을 것을 따는 행위로 인식한다면 안식일을 범한 것이 되는 것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자체의 정의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모세의 율법을 무기삼아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일이 아닌지를 판단하는 판단자가 되어 율법의 권위와 힘을 등에 업고 권력을 누리고 있었음
-바리새인들이 '하지 못할 일'이라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이 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받지 않으시고 오직 성경으로만 대답하심. 자신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성경으로 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리새인들을 도저히 당할 수 없었을 것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무엘상 21장 6절)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바리새인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다윗 왕의 이야기로 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사실 이 사건은 안식일과는 상관없는 사건. 한편 이 다윗의 행위는 안식일을 범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대한 율법 위반 사건이기도 했음. 특히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한 소년들까지 먹였다는 사실은 그 어떤 율법으로도 해석할 수 없는 사건이었음
-이 사건에서 다윗은 그 어떤 책망도 제사장 아비아달과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기록이 없음. 여호와 우리 하나님 말씀과 율법의 권위를 등에 업고 이를 이용하던 바리새인들이 한 마디 대꾸도 할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의 본질을 알려 주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의 중심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피조물이 있음을 알려 주시고, 그 피조물의 중심은 다시 창조주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며 안식일의 본질인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과 주인되심을 드러내심
2. 내가 무언가를 지키려는 열심이 어느새 누군가를 향한 경계가 되었던 경험이 있지 않나요?
나의 열심이, 제자들이 깨달은 성전을 향한 열심이, 나의 들끓는 교만의 불쏘시개가 되는 순간
요한복음 2장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시편 69편 9절)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내가 예배와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송과 감사를 내 삶의 최우선으로 삼으려는 열심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그 원인이 되지 않고 내 의를 내세우고 내 자랑이 되는 순간 나를 삼키게 되는 것을 기억할 것
심정이 통하는 기도
주님, 경계를 넘어 제게 먼저 오신 주님처럼 저도 누군가의 식탁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 - 영아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영아부 가정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아직 애통하고 비참한 마음으로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격 없는 제게 용서와 사랑과 죄사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윗과 같은 회개를 이루어내기를, 그리고 그 회개는 저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먼저 용서하시고 먼저 죄사함을 주신 다음에 일어나는 섭리임을 깨닫게 하셨으니,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제게 힘과 용기와 지혜와 기쁨과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시기만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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